그동안 칼럼에서 의식적으로 케이팝 혹은 아이돌 음악을 다루지 않았다. 많이 나오는 걸 넘어 과잉이라 생각하는 케이팝과 관련한 말과 글에 굳이 나까지 이야기를 보태고 싶지 않아서였다. 언론에서 이른바 ‘아이템’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그래서 난 케이팝을 아이템으로 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에 케이팝과 트로트 말고도 미디어가 비추지 않는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동시에 음악평론가로서 케이팝 말고 다른 소재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다.
이런 대의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내가 케이팝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물론 직업으로서 난 케이팝을 찾아 듣는다. 중요한 신보가 나오면 찾아 듣고, 누군가 좋다 하면 찾아 듣는다. 당연히 좋은 음악도 있다. 지금 가장 화제가 되는 음악이다 보니 전 세계의 반짝이는 재능들이 케이팝 시장으로 몰려든다. 그러면 음악의 질은 보장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음악들을 들으며 ‘내가 이 음악을 5년 뒤에도 들을까?’ 생각하면 대부분 부정적으로 자문자답은 끝나버린다.
나에게 좋은 음악은 오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5년 뒤에도 찾아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말하자면 생명력이 긴 음악이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케이팝은 나에게 그렇게 되지 못할 음악이다. 지금 케이팝은 가장 트렌디한 음악이지만 트렌드에 맞춰 빨리빨리 새로운 음악을 생산해 내야 한다. 그러면서 불과 1, 2년 전 발표한 음악은 유행이 지난 음악이 돼버린다. 지금 케이팝을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 3년 전 노래를 찾아 듣는 수는 얼마나 될까. 과거 한국의 대중음악은 ‘유행가’라는 멸칭으로 불리곤 했다. 깊이 없이 한철 불리고 말 음악이라는 멸시가 담겨 있는 표현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다시 유행가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케이팝은 피프티피프티의 ‘Cupid’다. 그 전에 뉴진스의 ‘Ditto’를 좋아했고, 온유의 ‘Anywhere’도 즐겨 들었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면 러블리즈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도 반복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러블리즈의 노래는 발표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듣고 ‘Ditto’도 겨울마다 찾아 들을 것 같다. 이 노래들의 공통점은 멜로디가 선명하고 다른 부수적인 장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케이팝은 과잉의 음악이다. 보컬도 과잉인 경우가 많고, 구조는 복잡하고, 사운드는 자극적인 데다 가득 차 있다. 이는 쉬이 피로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피프티피프티의 ‘Cupid’는 마치 다른 장르의 노래 같았다. 최근엔 피프티피프티와 뉴진스의 음악을 ‘케이팝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노래들의 특징은 바로 ‘노래’가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진지한 음악을 듣는 이들이 이지리스닝 팝 음악을 무시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이지리스닝 음악은 결국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 ‘트렌드’와 ‘유행’의 틈바구니에서 오래 들을 수 있는 음악은 결국 노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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