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형준]‘사법의 정치화’ 속에 존재감 잃어가는 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5일 21시 30분


황형준 사회부 차장
황형준 사회부 차장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자 헌법재판소는 국가적 혼란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재판에 속도를 냈다. 헌재는 매주 1, 2차례 재판을 열었고 총 3회의 변론준비기일과 17회의 변론기일 등 20차례 재판을 거쳐 이듬해 3월 10일 파면 결정을 내렸다.

탄핵심판의 재판장이었던 박한철 전 소장은 임기가 2017년 1월 31일 끝나 재판을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매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퇴임식에서 “헌법질서에 극단적 대립을 초래하는 제도적·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지혜를 모아 빠른 시일 내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 전 소장의 뒤를 이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은 이정미 전 재판관은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역사적 선고문을 낭독했다. 선고 당일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느라 미처 떼어내지 못한 뒷머리 ‘헤어롤’ 2개가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법조계에선 이때만큼 헌재가 국민적 지지와 박수를 받고 역할과 위상이 높았던 때는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헌재가 탄핵심판을 마무리함으로써 국가적 혼란을 마무리하고 새 대통령 선출 절차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높았던 헌재의 위상은 6년 만에 급격히 추락했다. 특히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두고선 ‘사법의 정치화’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헌재는 올 3월 국민의힘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을 모두 각하 또는 기각했다. 눈길을 끈 건 헌재 판단이 4 대 4로 극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진보 성향 재판관과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의 의견이 거의 모든 쟁점에서 대립하면서 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미선 재판관이 쥐게 됐다. 이 재판관의 결정에 따라 헌재는 입법과정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권을 침해했다면서도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여당에선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다”는 날 선 반응이 나왔다.

박한철 전 소장은 지난해 9월 발간한 저서 ‘헌법의 자리’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다시 사법을 특정 세력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의 숨겨진 정치 행위로 전락시키는 ‘사법의 정치화’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그 결과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되고, 헌법시스템의 약화와 훼손, 국가 공동체의 위기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썼다.

지금 헌재를 두고 지적되는 사법의 정치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심화됐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유남석 소장 등 이념적 지향성이 같은 재판관을 대거 충원했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인사권자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오면 결과적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게 된다. 그 책임도 인사권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올 11월부터 유 소장의 후임을 포함한 재판관 3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사법의 정치화#국민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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