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리학에 흥미를 느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당시 물리 선생님이 “물리 잘하네” 하며 칭찬을 해주곤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그 칭찬의 힘인지 모르지만, 나는 물리학자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좀 쑥스럽다. 물리를 막 배우기 시작했는데, 잘하면 무엇을 얼마나 잘했겠는가?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 강연을 하러 갔다. 오후 6시, 방과 후 시간임에도 약 100명의 학생들이 작은 교실에 빽빽이 모여 앉아 있었다. 대학에서 수업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 강연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읽고 난 다음 책 주제에 대해 강연을 듣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끝날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다.
“제 강연은 시험에도 안 나오고, 모르고 지나간들 여러분의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아요.” 긴장을 풀려고 이런 농담을 했지만, 진지한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놀란 순간은 강연이 다 끝난 다음이었다. 양자역학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질문이 진지하게 이어졌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와는 차원이 다른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비좁은 교실 책상에 앉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양자역학에 대해 상상력을 키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의 눈망울 속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새로운 공식이 나오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리학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근원적인 이끌림과 상상력이 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국의 작은 사무실에서 매일 반복적인 일을 했지만, 일하는 중간중간 서랍 속에 넣어둔 원고를 꺼내 다듬고 논문을 썼다.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은 상대론적인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그는 우주의 거대 중력을 생각했고, 그 중력에 의해 휘어진 우주의 공간을 그려 나갔으며, 양자적 성질을 가진 빛에너지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태양전지 원리를 찾아냈고,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검은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들을 알아냈다. 작디작은 책상은 작은 세상이 아니었다.
우리는 매일 변화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관성으로 흘러가는 하루를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자기 전까지의 이런 관성은 반복된다. 반복이라는 관성의 힘은 새로움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 역시 반복되는 일상의 관성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와 상상력 그리고 성실성.
이미 오후 10시가 훌쩍 지나 어둠에 휩싸인 고등학교를 나오면서 양자역학에 대해 궁금해하는 학생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상상해보았다. 지금보다는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창의적인 생각과 지식의 기쁨을 일깨우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역할이자 기쁨이다. 선생으로서의 설렘을 간만에 느꼈다. 오래전 나를 칭찬해줬던 물리 선생님도 생각이 났다. 밤바람이 부드러웠다. 이 학생들을 대학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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