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한 후배가 찾아왔다. 예전에는 자주 만나던 후배였는데 생각해보니 안 본 지 6개월이 넘은 것 같았다. 후배랑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왠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더니 후배는 한참 숨을 고른 후 이야기를 꺼냈다.
“친동생이 지난 핼러윈 때 이태원에서 사고를 당했어요. 평소에 이태원을 자주 가던 아이가 아닌데 그날따라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고 하더니….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가족 모두 병원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어머니는 아직도 치료를 받고 계세요. 밥 먹다가도 울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울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문득, 동생 생각이 나서 울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 누구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6개월 넘게 사람도 안 만났어요. 저는 이제 조금 괜찮아져서 형한테 연락드렸어요. 형이 마침 이태원 근처에 계시고…. 그 일이 있고 이태원에 한 번도 안 왔는데 이제는 한번 와보고 싶었거든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후배의 친동생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형제를 잃은 슬픔을 조금은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그 참사 이후 이태원역을 지나가기가 미안해서 한동안 옆길로 돌아서 가곤 했다. 그곳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미안하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일부러 피해 다녔는지 모른다. 지금은 이태원역을 지날 때마다 짧은 묵념을 하고 지나가지만 여전히 마음은 미안하고 속상하다.
나도 20년 전 친형을 떠나보낸 적이 있다. 형은 어느 토요일 오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난 형이 사고 난 현장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한동안 그 길을 피해 다녔다. 어쩌다 버스를 타고 그 옆을 지날 때면 일부러 눈을 감고 그 길을 보지 않았다. 보면 형 생각이 나고, 그럼 또 울 거 같고, 한동안 슬픔의 맨홀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 같아서 차마 그곳을 보지 못했고 그 길을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아니 피하면 피할수록 더 생각이 났다. 그래서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용기를 내서 그곳을 찾아갔다.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형의 시간이 이해가 되고, 그제야 형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었고 형을 보내줄 수 있었다.
나는 후배에게 우리 형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장은 힘들겠지만 더 자주 가고,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태원에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뎌지는 것밖에 없다. 처음엔 너무 아프고, 아픈 곳을 긁다 보면 상처도 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 후배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이태원역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난 기꺼이 동행했다. 이태원 골목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혹시라도 세게 누르면 아플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그리고 골목길 끝에 사람들이 적어놓은 추모 메시지를 읽으며 후배는 꺼이꺼이 울음을 삼켰다. 오늘 한 시간 울었으면 한 달 뒤에는 30분 울 것이고 1년 뒤에는 3분을 울며 조금이라도 슬픔이 무뎌지지 않을까. 난 말없이 후배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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