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중 수교 이래 역대 미국 대선은 ‘중국 때리기’의 경쟁장이었다. ‘베이징의 도살자’라고 비난한 빌 클린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등 역대 대통령은 선거전에서 한껏 중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당선 뒤엔 그 톤을 누그러뜨리며 중국과의 교류에 집중하곤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부턴 ‘선거 때 비판, 재임 중 협력’ 공식마저 깨졌다. 매사 발언에 신중한 조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민주주의의 뼈가 없는 깡패”라고 했고, 취임 이래 트럼프 시절의 대중국 견제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그랬던 바이든 행정부가 역대 최악이라는 미중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어제 워싱턴에선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간 회담이 열렸다. 양국이 격화된 경제전쟁에 상호 우려를 표시하는 수준이었다지만 일단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최근엔 미국의 대중국 외교라인이 잇따라 교체됐다. ‘차이나 하우스’로 불리는 중국정책 총괄팀 책임자인 릭 워터스 국무부 부차관보가 다음 달 물러나고, 앞서 중국 외교를 이끌던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은퇴를 선언했다. 로라 로젠버거 백악관 중국·대만 담당 선임국장도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대만협회(AIT) 회장으로 옮겼다. 중국도 5개월간 비어 있던 주미 대사 자리에 온건파 셰펑 외교부 부부장을 보냈다.
▷이런 움직임이 바이든 대통령의 예고대로 ‘해빙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은 그간 중국 견제 노선을 강화하며 대결과 경쟁, 협력을 함께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되 대결은 피해야 하며 충돌 방지를 위한 가드레일을 세우자고 했다. 사실 그런 기조 아래 지난해 말 미중 정상은 인도네시아 발리 회담에서 고위급 대화의 재개를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초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입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으로 양국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모든 것이 끊겼다. 결국 6개월 가까이 늦춰진 미중 대화가 이달 초 양국 외교안보 사령탑 간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을 계기로 서서히 재개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향후 미중 관계를 낙관하긴 이르다. 미국은 최근 ‘디커플링(공급망 단절) 아닌 디리스킹(위험 제거)’이라는 유럽연합(EU) 측 접근법을 수용했다. 다만 그런 정책 전환도 어차피 불가한 공급망 분리 대신 첨단기술 접근 차단 같은 핵심과제로 좁혀 정교한 실행전략을 가동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이제 미국은 본격적인 대선전에 들어간다. 공화-민주 양당이 드물게 초당적 합의를 이룬 대중 강경노선에서 벗어나는 어떤 유화 제스처도 국내정치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엇갈리는 신호와 전망 속에서 미중 간 갈등관리 외교가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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