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지난달 말 정부안이 나온 지 약 한 달 만이다. 당초 정부는 해당 법안을 5월 초 통과시켜 빠르게 피해자 구제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안 내용을 두고 여야 협의가 지연되면서 법안심사소위원회가 5차례나 열렸다. 특정 법안을 놓고 이처럼 소위가 여러 차례 열린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법안을 놓고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바로 야당이 앞세운 채권 매입 방안이었다. 피해자들의 보증금 채권을 공공이 매입해 우선 보상하고, 이후에 해당 주택을 매각하는 등의 방안으로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선(先)보상 후(後)구상’ 방안으로 알려지며 일부 피해자들이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부도가 난 채권을 공공이 매입할 때는 평가를 거쳐 일정액을 할인해서 매입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채권 매입 방안을 적용하기 위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 채권을 평가하면 실제 보상 가능한 돈은 보증금의 5% 수준이다. 언뜻 듣기엔 전세사기 피해자의 피해 금액을 공공이 보전해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따지고 보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사실상 돌려받는 돈이 거의 없다. 다른 사기 사건과의 형평성도 형평성이지만, 건건이 채권을 얼마로 평가할 것인가를 놓고 진통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은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최우선 변제금 적용 기준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이었다. 물론 재계약을 하며 전세보증금을 올려주는 바람에 최우선 변제금도 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들의 사연은 안타깝다. 하지만 누군가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등 손해를 끼치는 소급 입법, 특히 이미 확정된 사실관계를 무너뜨리는 소급 입법은 입법되더라도 헌법소원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최우선 변제금 기준을 소급 적용하는 방안이 사실상 입법되기 힘들다는 점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자신이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내쫓기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했다. 24일에는 또 다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들어 알려진, 목숨을 잃은 전세사기 피해자만 5명이다. 정치권이 수년간 정쟁으로 법안 통과 시기를 놓쳐 무산된 수많은 전세사기 피해 방지책을 생각하면 ‘내 방식이 옳다’며 싸우기 전에 서로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 합의점을 찾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특히 논의 과정에서 야당은 현 정부 탓, 여당과 정부는 전 정부 탓을 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 벌어진 ‘네 탓’ 싸움은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별법이 통과된 뒤에도 전세사기피해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자 인정 절차를 거치고, 경매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해 피해자들을 실제 구제하려면 갈 길이 멀다. 대책 발표도 늦었고, 특별법 발의와 입법도 늦었다. 후속 조치까지 늦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사기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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