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연설의 키워드는 단연 ‘자유’였다. 16분 37초 동안의 취임 연설에서 자유란 단어는 35번이나 등장했다. 3개월 뒤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33번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정부’라고 할 만했다. 규제 일변도의 국가주의 틀을 벗어나자는 뜻이라는 보충 설명까지 이어졌지만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대선캠프의 핵심 인사들도 “취임사가 강조하는 정확한 메시지를 잘 모르겠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정치 메시지는 학술적 논의의 영역이 아니다. 더욱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툭 던지는 화두가 아니라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구현하겠다는 비전이나 구체적인 정책 등이 뒤따랐어야 했지만 후속 조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새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인수위원회가 정리한 7가지 시대 과제 중에서 윤 대통령의 자유와 연결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할 대통령실과 정권 인수위가 계속 겉돌았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대통령의 메시지엔 정권의 정체성이 집약되어야 한다. 근간은 대선을 통해 투영된 민의(民意)다. 지난 3·9대선은 10년 주기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된 지난 정권에 대한 명백한 심판이었다. 삶의 현장을 외면한 이념 정치가 빚은 탈원전과 부동산 정책 실패, 공정 가치를 짓밟은 조국 사태, 종북 논란 등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심판대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는 이 과제를 바로잡을 정책을 고민하면서 대통령 메시지에 선명하게 담아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검찰 출신의 ‘0선 대통령’이 프로 정치인의 길을 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촉박한 대선 일정 때문에 정권을 뒷받침할 보수 세력의 온전한 지지를 끌어낼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는 심정으로 윤 대통령을 지지한 보수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간 냉랭했던 대야 관계도 그렇지만 지지층 결집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 1년이었을 것이다.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으면 집권 세력의 변명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오롯이 실력과 성과로 말해야 한다. 시험대는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이다. 거야(巨野)의 입법 폭주와 이에 맞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의 화해할 수 없는 동거는 총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지난 3·9대선은 끝났어도 초박빙 대선이 남긴 앙금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총선이 20대 대선에 이은 20.5대 대선으로 연장된 이유다.
집권 세력의 국회의원 선거는 여당이 주도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 정치와 떼놓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 국정 지지율과 여당 지지도는 같이 움직이는 동조(同調) 현상을 보이고 있다. 총선이 지역구별 각개전투임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 정치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큰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총선은 집권 세력의 국정 운영 성과에 대한 평가, 대선은 미래 비전을 놓고 승부를 겨루는 무대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라는 기계적 도식으로 나눌 수 없다. 더욱이 대선 연장전으로 치러질 총선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에서 촉발된 신냉전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 비전에 대한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여권은 대야 공세를 뛰어넘어 적어도 임기 말까지 주도할 비전·정책 제시에 절대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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