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병원 응급실에 간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모두 잠든 밤에, 그러니까 일반 병원이나 약국이 문 닫은 시간에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면 눈 빠지게 포털 사이트를 뒤져보다가 결국 응급실로 향한다. 하지만 더 응급인 환자가 많아 대기실 의자에서 열 오른 아이를 한참을 끌어안고 기다리다 겨우 진찰받고 동 틀 무렵 약 받아 귀가한다.
의료서비스 중개 스타트업 ‘닥터나우’는 이 같은 사각지대를 해결하려 생겨났다. 당초 ‘배달약국’을 표방했지만 약사회 반발에 의료 중개로 방향을 틀었다. 1990년부터 시범 실시된 원격의료도 의료계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한시 허용되며 30년 만에 물꼬가 터졌다. 맥킨지 출신 2명이 창업한 메라키플레이스(나만의닥터), 솔닥, 똑닥 등의 스타트업들로 관련 생태계도 두꺼워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3년여 간 비대면 진료는 1419만 명, 3786만 건에 이른다. 규제를 걷어내자 국민 편익이 높아지고 시장이 성장했다.
방식은 이렇다. 앱은 증상에 맞는 제휴 병원(1차 의료기관)을 보여준다. 고객은 병원을 선택해 증상을 설명하는 사진이나 글을 올린다. 조금 기다리면 의사 전화가 오고 화상 진료도 받는다. 의사가 처방전을 발행하면 GPS로 가까운 제휴 약국에 처방전이 가고, 약사는 환자에게 전화로 복약 지도를 한다. 대부분 2시간 안팎이면 약이 조제돼 환자에게 배송된다.
다음달부터 이 같은 비대면 진료가 엄밀히는 불법이 된다. 코로나19 종식으로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가 낮아지며 법적 근거도 사라지게 됐다. 의료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의사와 약사 출신 의원들 반대에 국회 법안심사 소위 문턱조차 못 넘었다. “정확하지 않은 화면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건 국민 건강에 위해”(전혜숙 의원), “제대로 된 진료 없이 약만 처방하면 부작용”(신현영 의원) 등 의사와 약사 출신 의원들은 반대했다.
결국 정부는 ‘시범사업’ 형태로 재진 환자 위주로 8월 말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당초 영유아와 청소년 초진을 야간과 휴일에 허용하려 했지만, 당정 협의를 거치며 무산됐다. 재진 환자는 30일 이내, 동일 병원에서, 동일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 진료 받은 이력이 있어야 한다. 약 배달은 원천 금지됐다.
스타트업들은 비대면 진료 환자 상당수가 초진이고, 재진 기준이 복잡한 데다 초진과 재진을 가르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사업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경증 위주의 이용자들도 불편을 우려한다. 실제 ‘공공 심야약국’이 20억 원 넘는 예산을 들여 운영되지만, 대부분 오전 1시면 문 닫는다. 오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공약국은 서울에서 단 1곳이다. 독감 유행기 소아청소년과를 가면 1시간 안팎 대기해야 하거나 아예 문열기 전에 가는 ‘오픈런’을 각오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 초진은 격오지에 한해 허용되지만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나 맞벌이 부부, 가게를 비우기 힘든 자영업자 등 도심 생활자에게도 요긴하다.
미국에서는 원격의료기업 ‘텔라닥’이 2021년부터 미국 대형보험사와 함께 1차 진료를 이미 시작했고, 아마존이 약국 체인인 ‘필팩(Pill Pack)’을 인수해 ‘아마존파머시’를 만든 데에 이어 1월부터는 월 5달러만 내면 처방전에 따라 약을 무료 배송해준다. 약사가 24시간 연중무휴로 비대면 상담까지 해준다. 처음엔 월그린과 CVS 등 기존 약국 체인에 위협이 될 거란 우려가 컸지만 오히려 이들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해 소비자 편의성이 높아지고 약국 산업 경쟁력도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규제 혁신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하지만, 의료 법률 회계 세무 등 직역단체 갈등이더 큰 규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혁신적인 제도와 최첨단 기술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한다는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했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의료법 개정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벌써 나온다. 환자 안전이 제1의 원칙인 만큼, 중증은 대면 진료를 권하고 위험 약품은 금지하는 방식으로 보완점을 찾아갈 수 있다.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 의료 소비자 후생을 높이고 혁신의 싹을 잘라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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