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옥’에 갇혀 산다는 것[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30일 03시 00분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시간이 곧 돈이다! 도배사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도배사의 일당은 한정된 시간 안에 해내는 작업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실적을 내면 수입이 늘어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수입이 준다. 초보 시절부터 지겹도록 이 말을 들어왔고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막상 그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올해 처음으로 아파트 한 동을 맡아 책임지고 작업하게 되면서 나는 시간 관리에 매우 예민해졌다. 작업 물량과 기한이 정해진 후, 곧바로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도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물론이고 쓰레기를 줍고 물건을 정리하는 시간, 짐을 옮기는 시간까지도 분 단위로 생각해 하루에 해낼 수 있는 작업량을 계산했다. 몸으로는 도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작업량과 시간을 생각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작업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해하기 일쑤였다. 맡은 작업량을 책임지고 완성해내기 위해 조기 출근과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고 일의 진행이 늦어진다고 생각될 때에는 일요일에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다 보니 심지어 파트너와 의견 차를 조율하는 순간조차도 속으로는 흘러가는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덕분에 이전보다 수입은 많이 늘었지만 마치 시간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시간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경험을 했다. 얼마 전 휴가를 내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날의 일이다. 결혼식장을 나온 나는 모처럼 다른 일정이 없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날씨도 좋고 마음도 느긋해지면서 결국 두 시간 정도 걸어 집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사용할까 전날부터 고민하기 바쁘다. 휴식을 취하더라도 ‘오늘은 꼭 푹 쉬어야지’ 다짐하며 시간을 ‘잘’ 사용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날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아주 펑펑 낭비해버린 셈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무 목표도, 목적도, 가치도 없는 일에 마음껏 사용해버리다니! 그 순간 마치 나는 시간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도배를 시작하면서 나는 다른 기술자들에 비해 뒤처지거나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작업을 해도 더 효율적으로 하려 했고 기술이나 경험이 부족한 부분은 더 많은 시간 일하며 보충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시간에 갇혀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는 삶에서 조금씩 기쁨도 잃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청년의 시기에는 공간에 집을 짓는 것보다 시간에 자기 집을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소유나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자기가 사는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나의 직업은 공간에 집을 완성해가는 일이지만 일을 하는 매 순간의 과정은 시간에 집을 짓는 일이다. 올해로 나는 도배 경력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시간과 삶에 대해 다시 살펴보아야 할 때다. 청년의 때에 시간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조금 더 천천히 살면서 시간에 집을 짓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시간의 감옥에서 문을 조금 열고 나오면 그만큼 시간 부자가 될 수 있다.

#시간의 감옥#실적#시간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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