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섬’에 살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육로로 연결된 북쪽이 휴전선으로 차단되어 있으니 섬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한국인은 국경 넘어 여행을 한다는 것은 곧 비행기를 타고 하늘길로 날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바닷길로 중국, 일본, 러시아를 향해 국경을 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유일한 육로 국경인 휴전선은 민간인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철저히 요새화된 장벽이다. 근처에만 가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10여 년 전 두만강을 따라 중국 쪽 도로를 버스로 달리며 북한 땅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모두 오른쪽 차창에 붙어서 숨죽여 그쪽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내 옆자리의 연변대 학생이 그 비장한 모습을 보면서 내게 한마디 던졌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여기를 지나갈 때면 모두 저쪽만 바라본단 말입니다. 저는 그게 참 신기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깨듯 정신을 차린 나는 그 친구에게는 저 두만강 국경이 어떤 곳인지를 물었다. 그저 예사로운 답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 물놀이하던 곳이라고, 가끔은 저쪽으로 넘어가 감자 삶아 먹고 오던 곳이라고. 자연경관인 두만강을 무서운(?) 국경으로 인식하느냐 편안한 놀이터로 인식하느냐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모두에게 국적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인은 국적의 틀 안에서 한민족 문화에 길들여졌고, 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이 내재된 마음속 ‘대한민국’은 국경을 넘어 여행을 할 때마다 동행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국경 넘어 외국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낯선 곳에 던져진 나의 국적 대한민국을 잠시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국경을 넘는 여행은 낯익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낯선 그곳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순례와도 같은 오묘한 경험이다. 특히 우리가 경험하기 어려운 육로 국경은 그러한 순례의 심정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의 대상이다. 튀르키예(터키)에서 버스를 타고 유럽연합(불가리아)으로 넘어가는 여행도 좋고, 나이아가라 폭포(미국과 캐나다)나 빅토리아 폭포(잠비아와 짐바브웨·사진)를 양쪽에서 모두 보기 위해 걸어서 국경을 넘어보는 여행도 좋다.
기대와 두려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뒤섞여 솟아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 대한민국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새삼 되돌아보는 기회도 될 것이다. 하늘길마저도 막아버렸던 지난한 코로나 시기를 끝내고, 바야흐로 ‘보복’ 여행처럼 국경 넘기의 봇물이 터져가는 이 시기에 육로로 국경 넘기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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