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장소의 관계[내가 만난 名문장/방승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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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환 도시설계 전문가·작가
방승환 도시설계 전문가·작가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을)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유시민 ‘유럽도시기행1’ 중에서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나만의 관점과 해석’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을 가급적 하나의 건축과 장소(text)보다는 다른 건축과 장소들 간의 관계, 즉 콘텍스트(context)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도시계획과 설계를 공부하고 경력을 쌓아 온 나만의 ‘다름’이 그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다름의 전략’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유시민 작가가 유럽 네 개 도시를 탐사하고 쓴 책의 서문에 실린 이 문장을 읽고 내가 하고 싶은 설명을 참 간명하게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 문장을 활용해 나만의 다름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낯선 도시를 여행하며 건축과 장소가 만들어지게 된 콘텍스트를 파악하는 과정은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과 비슷하다. 낯선 도시에 가면 내 위치부터 알아보듯이 도시계획과 설계의 시작도 해당 도시의 포지셔닝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다음 도시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도달 방법을 찾는데, 건축과 장소의 콘텍스트를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하면 계획과 설계는 미래를 향한 명징한 길잡이가 된다. 여기에 계획가가 콘텍스트를 촘촘하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관점으로 텍스트를 재분류하면 도시는 새로운 미래를 갖게 된다.

도시에서 건축과 장소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주변 상황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매개체로 보는 관점이 더 타당하다. 이런 관점은 계획가나 설계가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자들과 시민들에게도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야심 차게 발표하는 미래 도시 개발 조감도를 볼 때마다 새로운 텍스트가 기존 텍스트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상상해 본다.

#건축#장소#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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