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공공도서관에서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진 건 지난달 중순쯤이었다. 없어진 수백 권의 책은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민주화 시위 등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잡지와 영상자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콩 당국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불법 자료들이 유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도서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했다.
▷양초, 꽃다발, 노란색 티셔츠…. 톈안먼 사태 34주년을 맞은 이달 4일에는 금지 품목이 책 외에도 많아졌다.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쓰일 것으로 의심되는 물건이나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이었던 노란색 의류 같은 것들이 모두 문제가 됐다. 빅토리아 공원에 깔린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 속에 행인들의 소지품을 검색했고 일부는 연행, 체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건만, 해마다 최대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가했던 톈안먼 사태 추모 집회의 열기는 되살아나지 못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는 중국 본토에서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역사다. 수많은 대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군의 유혈진압은 “반사회주의 폭도 진압을 위한 단호한 조치”로 포장돼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게 통제돼 온 이 민주화 시위의 기억은 이제 유일한 추모 공간으로 열려 있던 홍콩에서마저 지워질 위기에 처했다. 2020년 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 더 크게는 중국 당국의 통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비판할 홍콩 언론사들은 지난 3년간 벌써 12곳이 문을 닫은 상태다.
▷중국의 ‘역사 지우기’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계기로 점차 강화되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은 공산당의 역사를 수정한 내용을 새롭게 학습하도록 하는 전국 단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교육기관에 배포된 자료에는 대약진운동이 최대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냈다는 사실은 빠져 있고, 문화대혁명도 ‘부패에 맞선 조치’로 평가했을 뿐 그 폐해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중국 당국이 ‘모든 공작의 생명선’으로 여기며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사상·정치 공작의 일환일 것이다.
▷중국과 홍콩이 닫힌 대신 대만, 호주, 캐나다, 유럽 등 10여 곳의 다른 도시에서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집회들이 열렸다. “우리도 34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베이징에 전달해야 한다”는 해외 주재 중국 청년들의 결기는 비장하다.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톈안먼 해시태그를 달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는 글도 이어졌다. 중국의 검열이 닿지 않는 온라인 공간은 훨씬 넓고 깊다. 억지로 바꿔 쓰려 한다고 해서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 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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