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여행 온 지인과 함께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메뉴판을 유심히 보던 지인이 달팽이를 발견하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여줬어∼.’ ‘달팽이’라는 노래의 가사였다. 파리에 가면 반드시 달팽이를 먹으라는 회사 동료의 말을 따라 식당에 왔는데 막상 귀여운 달팽이를 먹으려니 패닉이 되어서인지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달팽이를 주문했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달팽이를 먹어왔다. 문헌을 살펴보면 이미 선사 시대부터 채집을 통해 식용으로 인기를 끌었고 로마인들은 고대 로마의 자연학자인 플리니우스의 저서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아 함부로 만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하게 여긴 것으로 확인된다.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의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에 가면 전식으로 나오는 달팽이(에스카르고·escargot)를 메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이 소비하는 그 수많은 달팽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식용으로 쓰이는 달팽이는 ‘부르고뉴 달팽이’로 불리는데 부르고뉴 달팽이를 파는 곳에서는 야생 부르고뉴 달팽이종만 사용해야 한다. 또 달팽이 산란기인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는 달팽이를 잡거나 판매해선 안 되고, 껍데기 지름이 3cm 이상의 달팽이만 수집 및 판매하도록 장관령으로 정했다. 몸집은 작지만 여간 귀한 몸이 아니다.
프랑스의 식용 달팽이 생산량은 연간 1000t에 불과하다. 연간 소비량인 3만 t을 충당할 수 없어 슈퍼마켓의 냉동 달팽이 제품이나 대중적인 식당에서 판매하는 달팽이 요리는 폴란드와 동유럽에서 수입된 같은 종류의 달팽이를 주로 사용한다.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에서 달팽이가 유명해진 배경은 뭘까. 18세기경 달팽이들이 포도잎을 자꾸 갉아먹자 주민들이 달팽이를 잡아 요리를 만들어 대중화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부르고뉴의 욘 지역에서 숙소를 운영하던 발레 신부가 1793년에 처음 레시피를 만들었고 이후 ‘왕의 요리사’라 불리던 마리앙투안 카렘이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를 위해 저녁 식사로 달팽이 요리를 내놓으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레시피에 따르면 통으로 삶은 달팽이를 찬물에 담근 다음 껍질을 씻어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버터, 마늘, 바질과 함께 오븐에 조리한다. 골뱅이와 비슷한 식감이어서 한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조리된 부르고뉴 달팽이 요리는 보통 6개 또는 12개의 달팽이가 들어가는 동그란 홈이 있는 접시에 서비스된다. 껍데기를 집을 수 있는 작은 집게와 살을 꺼낼 수 있는 포크가 함께 제공돼 달팽이 속을 쏙쏙 빼 먹는 즐거움이 있다. 거기에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뫼르소나 샤사뉴 몽라셰 같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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