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여행길에 들른 식당.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무리 중 한 분이 한 말이다. 앞에 있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능청스레 그 말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잘살아가꼬 내장에 기름이 잘잘한갑고만.” 맞은편에 앉은 또 한 명의 친구가 말을 보탰다. “그것이 아니라 노동을 안 항께 그래 노동을.” 혼자 점잔을 빼며 밥을 먹는데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대화는 송강호가 하면 참 찰지겠다 싶으면서 일상의 대화가 무슨 영화 대본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이곳은 해남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길에 들른 식당이었다. 신문사에 있는 여행 담당 후배 기자에게 현지인들 가는 맛집 어디 없을까? 하고 물어 받아든 상호였다. 왜 그런 곳 있잖은가. 근처에 있는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밥을 먹으러 오고 오랫동안 비슷하게 반복되는 풍경으로 분위기가 편안하고 관광객이 들어가면 딱 이질감이 느껴지는. 처음부터 ‘현지인 맛집’을 따지며 유난을 떨고 싶진 않았다. 숙소에서 문자메시지로 보내준 주변 맛집 리스트를 보고 두어 곳을 갔는데 뭐랄까 그냥 무미(無味)했다. 시스템이며 흐름이며 너무 매끈해서 딱히 매력이 없는. 그중 몇 곳은 2인상이 기본이라 가보지도 못하고 포기해야 했다. 그 후 바로 레이다망을 ‘현지인 추천 맛집’으로 돌렸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전복솥밭이 1만5000원. 저렴하진 않았지만 토실한 갈치구이 두 쪽과 부푼 계란말이, 이런저런 밑반찬이 입에 착착 감겼다.
흡족한 기분으로 차를 돌려 강진으로 떠났다. 다음 날 아침 운동회라도 열린 듯 요란한 새소리에 깨 고무신을 신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을 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푸근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 밑에서 잤소?” “네∼.” “산책할라고?” “네∼.” “저 위에까지 가봐도 좋은디 저기로 가믄 난리가 나부러.” “네? 왜요?” “개들이 엄청나게 지서브러. 오른쪽에 두 마리, 왼쪽에 한 마리.” 꽃 정보도 넌지시 알려주셨다. “저 담벼락에 자잘한 흰꽃 이름 아요? (헤헤 몰라요.) 저것이 마삭줄인디 향이 엄∼청 좋아. 내가 저 밑에서 살았는디 이 향을 따라가꼬 이리로 올라왔었당께. 저 밑에 집에도 그 꽃이 천지인디 거가 의원님 댁이요. 의원님.” 저녁에 간 주막 콘셉트의 식당에서는 “시방 혼자 와서 저녁밥을 달라고 하는 거여?” 하는 핀잔을 들었지만(물론 정감 어린 농담으로) 속 없는 사람 마냥 내내 기분이 좋았다. 다른 땅에서는 다른 소리가 나는구나. 남도에서 돌아온 주일. 다시 가고 싶다. 귀가 즐거운 곳으로.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