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장병들이 첫 번째, 이등병들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장교들까지 퇴함했지만 그는 남겠다고 했다. 부하들의 거듭된 재촉에도 아픈 어깨를 연신 어루만지며 남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폭침당한 배와 함께. 한 병사는 함장님을 두고 가면 자신들이 죄인이 될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렇게 부하들의 설득 끝에 그는 배 밖으로 나왔다. 이날 구조된 58명 중 마지막으로. 최원일 당시 천안함장 얘기다.
2010년 3월 26일 밤. 104명의 승조원 중 46명은 천안함 폭침으로 깊디깊은 검은 바다에 묻혔다. 살아남은 최 함장은 몇몇 승조원들과 함께 배 곳곳을 훑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함수에 생존해 있던 승조원들은 모두 구조됐다.
최 함장은 피격 당시 함장실에 있었다.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곳은 주로 병과 부사관이 생활하던 장소였다. 함장실은 문이 뒤틀렸지만 부하들은 소화기로 문을 부수고 최 함장을 구출했다. 부하들의 목소리를 들은 최 함장의 첫마디는 이랬다. “부상자가 얼마나 되나.” 수년이 흐른 뒤 최 함장은 한 생존 장병을 만나 이렇게 되뇌었다. “병사들이 있던 곳이 아닌, 차라리 함장실이 피격당했어야 했다.”
갑판병 출신으로 피격 당시 말년 병장이던 전준영은 전역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천안함 승선이었다. 이날 폭침으로 그는 동기 4명을 모두 잃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전역 하루 전 그는 최 함장과 계단에 앉아 깊은 얘기를 나눴다. 평소 군내 부조리 등을 자주 묻고, 사병들이 얘기하면 누구보다 먼저 챙겨주던 이가 최 함장이었다. 계단에서 둘은 펑펑 울었다. 최 함장은 “혼자 전역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흐느꼈다.
최 함장은 천안함 폭침 전까진 ‘잘나가던’ 장교였다. 천안함 침몰 뒤엔 그의 군 경력도 침몰했다. 진급은 밀리고 한직을 전전했다. 10년도 더 흐른 2021년이 돼서야 그는 대령으로 진급과 동시에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 최 전 함장은 부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책하며 숨어 살 듯 지낸 그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천안함의 명예를 억측과 허위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땐 일부 정부 인사가 천안함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천안함 자폭’ 망언을 한 혁신위원장 해촉을 요구한 최 전 함장을 겨냥해 “무슨 낯짝으로 얘기를 한 것인가. 부하를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그는 사과했지만 생존 장병들의 가슴엔 대못이 박혔다.
전준영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함장님이 아직도 저를 보면 ‘패잔병 아빠란 소리 안 듣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생존 장병 A 씨는 “함장님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의 함장님”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천안함의 경계 실패 책임을 지적할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표현의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부하를 다 죽였다”는 발언은 다르다. 거대 야당의 입인 대변인이 그냥 툭 던질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A 씨는 “그런 말이 우리를 죽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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