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지 사흘 뒤인 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핵 선전이 경종을 울리는 이유’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NYT는 북한이 공개한 전술핵무기 화산-31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핵 무인 수중 공격정 실험 등을 열거하며 “세계는 이제 미국과 동맹국에 더 큰 위협을 제기하는 더욱 크고 위험한 무기의 도래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야에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재진입 기술 등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분야가 남았지만 사실상 미국 본토에 핵 보복을 감행할 수 있는 ‘세컨드 스트라이크’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김정은과 그의 정권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되 협상을 거부하면 확장억제력 강화로 북한을 압박하고, 경제 제재로 핵·미사일 개발을 차단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3축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이다.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외교”라고 강조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1기 반환점을 넘어선 지 오래지만, 북한과의 대화에는 스스로도 희망을 버린 모양새다.
대북 경제 제재의 핵심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무용지물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내놓고 있는 주장들은 단순히 북한을 두둔하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겅솽(耿爽)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는 2일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유엔 안보리 공개회의에서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은 전략 잠수함을 한반도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는 지정학적인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미가 합의한 워싱턴 선언이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확장억제 강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북한에 대해선 “모든 당사자의 우려가 고려돼야 한다”며 고집스럽게 두둔하는 중국이 한국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는 무시하며 자위적 확장억제 조치를 트집 잡는 것은 한국을 미중 지정학적 갈등의 졸(卒)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나오기 어려운 강변이다.
그런데도 보니 젱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은 6일 ‘위성 발사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책임을 지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 반대를 들어 “지금 당장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나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확장억제 강화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터너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4일 “북한에 대한 핵 억지력은 죽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을 막는 대신 핵우산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미 주류 정치권에서조차 공개적으로 미국의 대북 핵 억지력에 공개적으로 의구심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미중 협력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마침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8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의 마이크론 판매 제한과 대만 해협,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중 간 풀어야 할 현안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가 미중이 논의할 의제 리스트 어디쯤에 올라와 있을까. 이번엔 “미국은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는 틀에 박힌 수사에 그치지 않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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