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고·기는 인기가 없다.” 최근 기획재정부 내부 익명 게시판에서 한 직원이 부처의 현실을 한탄하며 올린 글이다. 음식 얘기가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기재부의 앞 글자를 딴 약어다. 저연차 사무관들과 고시생들 사이에서 ‘기피 부서’를 통칭하는 말이다. 일은 고되고 보상은 적고 승진도 늦어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다. 한때 최고의 엘리트들이 몰렸던 경제 부처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달 기재부 내부 익명 게시판엔 ‘부총리님, 전출을 막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도 올라왔다. 다른 부처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1 대 1 교류가 원칙인데 기재부로 오겠다는 사람은 없고 가겠다는 사람만 넘친다. 해당 글에는 전출 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업무 환경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며 성토장이 됐다. 지난해에도 내부망에서 “우리의 직업은 (승진 비전이 안 보이는) 사무관”이라며 인사 적체에 대한 불만이 들끓었다.
▷과거엔 행정고시 성적 최상위권이 기재부 등 주요 경제 부처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요즘엔 선호 부처가 많이 바뀌었다. 지난해엔 행정고시 67기 5급 공개채용에서 일반행정직 수석이 해양수산부에, 차석은 농림축산식품부에 지원해 화제가 됐다. 경제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는 물론이고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는 고용부, 국민들의 관심이 몰리는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 등 경제 부처의 업무량은 상당하지만 금전적 보상이나 승진, 유학 등의 메리트는 적다. 지난해 정부 18개 부처 중 연차휴가를 가장 못 쓴 부서는 고용부다. 중기부(2위), 국토부(3위), 산업부(5위) 등 경제 부처가 뒤를 이었다.
▷소신껏 일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한몫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이 반복되고 정책 기조는 손바닥처럼 뒤집히기 일쑤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랐다가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처벌되는 사례도 생기면서 미래가 불안하다. 오해를 살 만하거나 민감한 결정은 피하고, 핵심 부서보다는 뒤탈 없는 부서를 선호한다. 오래 버텨 봐야 퇴직 이후 갈 곳도 마땅찮으니 빨리 탈출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경제기획원은 명예롭고(honorable) 재무부는 막강하고(powerful) 상공부는 화려하다(colorful).” 세 부처 장관을 모두 지낸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는 개발경제 시대 경제 부처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각각 경제 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고, 나라의 돈줄을 쥐고, 산업과 기업을 주물렀다. 관료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예전처럼 돌아가서야 안 되겠지만, 공무원들이 나라 경제를 이끈다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신명 나게 뛸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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