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멍석 깔고 싱하이밍 “중국에 베팅” 협박
外勢의 어두운 그림자…상처 입은 국민 자존심
中 뒷배 삼아 정치活路 모색하려 했다면 큰 오산
‘오만과 무례’보다 ‘소국 의식’ 보인 게 더 씁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 사리원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한 해 50명씩 서로 학생들을 보내자고 합의한 데 따른 교환 프로그램으로 북한에서 유학을 했다고 한다. 평양의 김일성대가 아닌 인구 30만 명의 지방 소재 농대에서 공부한 경위는 알려진 게 없다.
싱 대사는 굳이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다. 처음엔 평양 말투를 썼지만 몇 차례 한국 근무를 거치며 서울 말투로 자연스레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등 이유로 3년 전 부임 때 친한파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보단 ‘한반도통’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그가 한국어를 잘한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이번에 온 국민이 알게 됐다. 한국어로 10여 분간 “중국 패배 베팅은 잘못”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위대한 중국몽(中國夢) 진행” 등의 도를 넘는 발언을 쏟아내는 걸 방송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중국어로 했다면 듣는 기분이라도 좀 달랐을지 모른다. 한국어라 더 임팩트가 컸던 것 같다.
싱 대사는 관저 행사가 잦다고 한다. 당연한 업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초청은 의례적인 행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 선언’, 한미일 공조 강화 등 일련의 ‘중국 포위’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다분히 전략적으로 추진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알고 있을 이 대표가 생중계 형식을 택한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사법 리스크는 물론이고 최근 임명 9시간 만의 혁신위원장 사퇴 파동으로 더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미국 편중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으니 임박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고리로 중국과 손잡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면 분위기 반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을까. 관저 회동 유튜브 공개는 싱 대사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싱 대사의 오만과 무례를 일일이 따져봐야 뭔 의미가 있을까 싶다.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거쳐 이젠 국제무대에서 대놓고 근육 자랑을 일삼고 있는 중화 본색이 발현된 한 사례일 뿐이다. 상대가 자기들보다 강한 나라든 약한 나라든 늑대의 발톱을 대놓고 드러내기로 작정한 마당에 뭘 말하겠나. 우리 정부는 ‘비공개 초치’로 항의를 했지만 싱 대사는 자기 입장에선 할 말을 한 것이고 전랑외교의 모범전사로 훈장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니 “국장급이 감히…” 등의 반응도 우습고, 차라리 무대응 전략이 더 당당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대표는 “마땅치 않아도 협조하는 게 외교”라며 논란을 피하려 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발언보다 형식이다. 특정국 대사에게 그런 훈시와 으름장의 자리를 깔아 준 것, ‘대국의 칙사’인 양 구는 듯한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모습 자체가 주는 불편함이다. 단지 조급함의 문제인가, 아니면 중국을 뒷배 삼아 정치 활로를 찾으려 했던 건가.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둘의 ‘유튜브 작당’에 적지 않은 국민들의 자존심이 뭉개졌다는 점이다.
여권에선 “삼전도의 굴욕” “현대판 위안스카이” 등 비난이 쏟아진다. 구한말 30세 안팎의 나이에 무려 12년 동안이나 상왕 노릇을 했던 위안스카이에 싱 대사를 빗대는 등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다만 국가 존망의 위기를 똘똘 뭉쳐 헤쳐나가지 못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외세(外勢)를 끌어들였던 굴욕의 기억이 소환됐던 건 사실이다. 이 대표가 뭔지 모를 ‘소국(小國) 의식’을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고 불쾌하단 얘기다.
국제 관계에서 하나의 해법, 하나의 만병통치약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더라도 ‘7 대 3’ ‘8 대 2’의 영리한 중국 안배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갈등 증폭은 피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현 단계에서 대화를 서두를 건 없다. 중국의 이간질에 놀아나는 것도, 만만하게 보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번 헛발질은 위태위태한 한중 관계에 도움은커녕 돌덩이를 던진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몇 가지 궁금증이 머리를 맴돈다. 이 대표는 성남시와 경기도의 지도가 아니라 한반도 지도, 동북아 지도를 펼쳐놓고 국가 대(大)전략을 깊이 사색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을까. 툭하면 “굴욕 외교” 운운하며 외교 이슈의 국내 정치화를 시도해 왔던 친명 세력들은 이번 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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