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이자 추상회화의 거장,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그는 1913년부터 1974년까지 61년을 살다가 갔다. 전체 작품 규모 등 그가 남긴 미술 유산은 사후 5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카탈로그 레조네(검증된 전작도록)가 정리되지 않아 객관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호암미술관에서 올 9월 10일까지 열리는 ‘한 점 하늘…김환기’전은 수화가 독자적인 추상미술을 완성하기까지 각 시기별 대표작은 물론이고 전시된 적 없는 미공개작, 드로잉 소품, 스케치북 등 총 120여 점을 ‘회고전’으로 집대성했다. 또한 그가 한국적 미감의 원형으로 삼았던 도자기, 신문에 발표한 글, 작가노트·일기, 편지, 사진, 스크랩북 등 100여 점을 전시 맥락 안에 구성했다. 유족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덕분에 우리 감상자는 ‘김환기’라는 인물의 생과 미술을 입체적으로 볼 기회를 얻었다. 나아가 그간 유명세와 엄청난 작품 경매가로 더 많이 회자된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가가 성취한 예술 실체에 발맞춰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사실 김환기는 끊임없는 내면 성찰과 미학적 실험을 거듭함으로써 자신만의 회화 양식을 선 굵게 일궈냈다. 또 일본 유학, 파리 체류, 뉴욕 이주 등 평생 자발적으로 낯선 생활과 창작 환경에 처함으로써 멈추지 않는 자기 계발의 역학을 가동시켰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한국 추상회화의 특별한 세계가 열린 것인데, 호암미술관 회고전은 김환기의 그 창작 여정을 따라가 보기에 좋은 그라운드다.
김환기는 생전에 스스로 ‘점화(點畵)’라 명명한 대형 유화 추상을 비롯해 신문지 위 드로잉, 편지 여백 스케치, 조각, 책 삽화 등 형식 면에서 다양하고 양적으로도 넘치게 작업했다. 작업을 해온 40년간 1500점 이상을 남겼다는 추산이다. 이는 파블로 피카소가 약 70년간 3만여 점을 작업한 정도나,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60년대부터 이뤄낸 방대한 규모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한 인간이 남긴 문화예술 자산으로는 대단한 수준이다. 나아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시간 위에 김환기의 생애를 중첩해 분석할 경우 측정 불가한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요컨대 김환기의 생몰연대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롤러코스터처럼 격렬한 부침에 시달린 근현대사의 시간이기도 하다.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한국전쟁으로 인한 참상과 이어진 최빈국 상황, 박정희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계획과 군사독재 치하가 모두 같은 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세계사로 봐도 그 연도는 인류의 질곡을 담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됐으며, 일본이 패망했고, 중동전쟁의 여파로 터진 두 차례 ‘오일 쇼크’에 전 세계가 휘청거렸다. 이렇게 역사와 개인사를 교직해 보면 그가 어떻게 척박한 시대를 뚫고 가난과 무명과 약자의 조건들 속에서 오늘날 현대미술계에 고유한 지분을 가진 한국 추상회화의 원류가 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한 점 하늘…김환기’를 보면 그런 김환기에 대한 신기함이 구체적 앎으로 변한다. 아니,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던 그의 초기작과 명작을 실제로 마주함으로써 간접 지식 혹은 조각 정보를 뛰어넘는 미적 경험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535호인 ‘론도’(1938년)는 학창 시절 미술책으로 다들 봤겠지만 직접 감상한 이는 거의 없을 그림이다. 음악의 론도 형식처럼 직선과 곡선을 순환 반복시켜 비정형의 리드미컬한 색채 면을 조형한 61×72cm 크기의 추상화다. 자그마한 작품인데, 크고 흰 벽에 단독 전시돼 감상자로 하여금 청년 김환기가 형상에서 추상예술로 나아간 자기 발전의 결정적 국면을 주목하게 한다.
그의 ‘점화’ 화풍이 정점에 이른 ‘5-IV-71 #200’(1971년)은 어떤가. 시기적으로는 ‘론도’와 정반대로 말년에 속하는 대작이다. ‘우주’라는 근사한 별칭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은 큰 캔버스 두 개를 세로로 길게 이어 붙인 화폭에 수많은 푸른 점들이 두 개의 나선형으로 돌며 점점이 찍혀 있다. 그야말로 화가가 붓 한 자루로 생성해낸 아름다운 우주다. 매우 역동적이면서, 지극히 고요하고 질서정연한 것이 딱 고대부터 인류가 ‘가야 할 길을 물었던’ 바로 그 창공 같다. 신화의 주술 너머, 과학의 증명 너머, 현대적 회화예술의 추상으로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환기의 거장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환기는 내내 겸손했던 것 같다. 아니, 자신의 예술적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전시에 소개된 김환기의 1963년 글은 다음과 같은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태양처럼 찬란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항상 뜨거운 것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예술사의 많은 거장들이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생전에는 저평가되거나 악평에 시달렸다가 사후에야 유명해지고 작품가가 천정부지로 솟는다는 식 얘기가 아니다. 그것도 맞다. 그런데 거장들의 운명에서 더 큰 공통점은 그 예술의 스펙트럼이 평범한 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고 실체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작 예술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겨 조바심을 내며 일평생을 예술에 헌신한다. 한국 미술에서 다른 어떤 존재로도 환원될 수 없는 사람, 동서양 미술을 가로질러 봐도 단자(單子·Monad) 같은 미학적 독창성과 풍요를 이룬 김환기가 또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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