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선택[임용한의 전쟁사]〈267〉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2일 23시 30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했다. 자주 인용되는 문구지만 그럴듯하면서도 애매한 발언이라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이 말의 본의에 제일 가까운 해석은 “말로써 해결할 일을 주먹으로 해결한다” 혹은 그 반대로 “말로 하다가 안 되니 주먹으로 해결한다”이다. 이런 상태가 전쟁이라는 뜻일 것이다.

즉, 국가는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전에 최대한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권고이기도 하다. 전쟁의 역사를 보면 많은 국가들이 그런 노력을 하긴 한다. 강대국이라고 해도 전쟁을 벌이면 피해가 발생하고 손실은 국가에 부담으로 남는다. 패배한 나라도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남는다. 성인은 피로 피를 씻지 말라고 하지만, 핏자국은 피가 아니면 씻기지 않는 것이 인간사의 감정이다.

그래서 손자도 전쟁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만약 시작한다면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끝내야 한다고 했다. 손자가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고 병서를 저술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원한은 쌓이고 공포는 누적되면서 지도자부터 지휘관, 일선의 병사들까지 점점 더 비합리적 선택을 하게 되고, 비합리적 선택에 둔감해진다. 군기가 엄정하던 군대도 패주하는 상황이 되면 가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절대명제이자 합리적인 결론을 수행할 수단, 특히 정상적인 방법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비합리적인 수단이 절대명제, 절대 합리적인 명제 앞에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결국 전쟁은 아무리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로 시작했다고 해도 어떤 수단, 어떤 행위도 가능해지는 비합리의 합리화, 악마의 선택, 모든 사람의 악마화 상태로 발전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카호우카 댐 파괴 사건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전쟁은 어떤 선택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사람은 천사가 되기보다 악마가 되기가 훨씬 쉽다.

#악마의 선택#클라우제비츠#전쟁#정치의 연장#악마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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