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말이 맞지만[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9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3일 23시 30분


달라이 라마가 1973년 유럽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젊은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티베트에 대해 세상에 알려야 하는 사람이 자비와 선한 마음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졌다. “전 당신이 티베트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 대해 세상 사람들을 향해 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군대가 티베트인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문화를 말살하고 있었다. 그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달라이 라마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짐을 덜어줄 거라는 “그릇된 희망”을 갖고 그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내 자신의 짐을 추가로 얹어서 돌려보낼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짐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는커녕 티베트 얘기로 부담스럽게 할까 봐 머뭇거린다는 말이었다. 그의 이타적인 말에 젊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울었다.

그렇게 울었던 티베트 젊은이의 이름은 로디 기아리 린포체. 세월이 흘러 그는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외무장관이 되어 중국과의 협상에 나섰다. 그때 톈안먼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군대가 학생들을 짓밟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광장의 젊은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의사”를 담은 성명을 발표하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중국과 협상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는 말에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성명을 발표하지 않는다면, 난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그는 등소평의 반감을 사 티베트 문제가 더 꼬일 것을 알면서도 학생들 편에 섰다. 그에게는 중국 학생들이 중국 군대에 짓밟힌 티베트인들과 마찬가지로 위로와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는 중국 때문에 티베트를 떠나 유랑하는 삶을 살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

#당신 말이 맞지만#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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