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워싱턴 국빈 방문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완벽한 무대였다.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12년 만이며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입장에서도 출범 후 두 번째 국빈 방문이었다. 두 정상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징되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넘어 향후 협력하기로 합의한 미래지향적 의제 등도 폭넓게 다뤘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쌍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 투자를 기념하고 공급망 안보와 우주, 인공지능, 생명과학, 양자 컴퓨터 기술 등 첨단 기술 프로젝트에서 협력하겠다는 광범위한 약속을 발표했다.
두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굳건한 한미 관계를 뒷받침할 따뜻하고 개인적 유대감을 형성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이라는 영예를 안은 윤 대통령은 의원들의 박수 갈채로 수차례 중단될 정도의 명연설을 통해 앞으로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맡을 역할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특히 미국인들은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주최한 백악관 만찬에서 브로드웨이 스타들과 함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윤 대통령의 노래 실력과 용기에 진심으로 큰 인상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연설가로서, 또 가수로서 앞으로 미국을 방문할 해외 인사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기준을 세웠다. 전 주한 미국대사로서 윤 대통령이 오찬에서 한국과 미국 6·25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존경을 보낸 것을 지켜본 일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었다.
이번 회담의 가장 중대한 결과물은 한미 정상이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연합방위태세 공약을 가장 강력하게 재확인한 ‘워싱턴 선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경우 전략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국을 방어하겠다고 선언했다.
워싱턴 선언에 따라 미국은 1980년대 이후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전략핵 잠수함을 포함해 한반도 주변에 미국의 전략자산을 가시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또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한반도와 관련한 미국의 핵전략 기획에 한국군 지도부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미 핵협의체(NCG) 역시 만들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확장 억지력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표명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한국의 오랜 약속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공개적으로 핵탄두 비축량을 늘리며 전례 없는 수준으로 미사일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이 전례 없는 선언은 북한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를 보내기 위한 의도를 담은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도발에 우려하는 한국 국민들에게 한국의 전략적 능력은 북한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이며,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한미 양국이 북한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고안됐다.
정상회담 기간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은 외교에 달려 있다는 신념을 거듭 재확인하며 북한과의 대화에 열린 태도를 견지했다. 다만 북한은 이제 대화보다 대결에 더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가 외교적 노력 재개를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나온 이번 워싱턴 선언은 북한이 극도로 심각성을 갖고 받아들여야 할 한미 연합 방위태세의 중대한 진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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