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어어부 프로젝트가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배우 트위스트 김이 손발이 결박된 채 겁에 질린 모습으로 있는 앨범 커버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그 안의 음악은 더 놀라웠다. 백현진, 장영규, 원일, 세 명이 만들어낸 음악은 그동안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신선했고, 또 그만큼 불편했다. 이 신선한 소리를 감상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보다 스물다섯 살 정도 어렸던 나는 이 음악을 즐길 수 있어야 예술을 이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라는 노래가 대표적이었다. 어느 불행한 가족의 이야기를 백현진은 위악적으로 노래했다. 일을 하다 사고로 ‘척추가 분리’된 가장은 그날부터 산소 대신 한숨을 마시고, 한숨 대신 소주를 마시고, 소주 대신 침묵을 마시다, 결국 염산을 마셨다. 노래에서 묘사하는 상황을 듣는 게 너무나 불편했다. 하지만 백현진의 위악적인 가창과 단순한 연주는 노래를 반복해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노래를 들은 지 2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내가 변한 만큼 어어부 프로젝트 구성원의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장영규는 영화음악, 무용음악 등의 다양한 작업을 하며 동시에 ‘범 내려온다’를 부른 밴드 이날치를 이끌고 있다. 원일은 전공인 국악에 더욱 몰두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을 거쳐 현재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새로운 시도를 모색 중이다. 백현진은 그동안 미술가로서 명성을 쌓았고, 배우로서도 제법 유명한 이름이 됐다. 그리고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몇 해 전, 음악가 백현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더 이상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 같은 노래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예술로 표현하며 묘한 쾌감을 느끼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다고 했다. 물론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는 나쁜 노래가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렀고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렇게 흐른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나이 들어가는 백현진의 모습은 음악에도 그대로 담겼다.
백현진은 이제 ‘빛’이란 노래를 부른다.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빛’은 내가 근 10년 동안 자주 즐겨 들은 노래 가운데 하나다. 많이 흥얼거리기도 한 노래다. 이는 곧 ‘빛’이 그만큼 대중적인 정서와 멜로디를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의 백현진을 생각하면 ‘대중적’이란 표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대중적인 배우가 되었고, 또 대중적인 노래를 부른다. 최근 화제가 되는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선 주인공 이나영이 ‘빛’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당일치기 여행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드라마다.
그 일상에서 ‘빛’이 나오는 장면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가 좋았고, 과거 패기 넘치던 예술가가 이제 일상의 노래를 부르는 ‘나이 듦’이 좋았다. ‘빛’ 덕분에 그 소박한 여행이 조금은 더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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