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속의 시대상[서광원의 자연과 삶]〈73〉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4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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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아주 잠깐이었지만 연예인을 만나는 게 일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멋지다 싶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혼자 속으로 놀라곤 했다. 화면에서 보던 것과 달리 얼굴이 정말 작았다. 시쳇말로 ‘주먹만 한 얼굴’도 있었다.

그땐 그렇게 연예인에게만 필수인 듯했던 작은 얼굴이 이제는 누구나 바라는 세상이 됐다. 카메라에 담기는 이미지가 중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와는 달리 얼굴이 큰, 그러니까 (나처럼) ‘얼큰이’들이 대우받는 (아주 괜찮은) 세상이 있다. 고양이들의 세상이다.

이들은 상대를 처음 만나면 조심스레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한 채 서로를 탐색한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쩍 벌리며 하품 같은 걸 하는데, 얼핏 보면 잠이 올 정도로 상대가 하찮다는 듯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 입이 더 큰지 기 싸움을 하는 것이다. 입이 큰 쪽이 강자로 인정받기 때문인데, 입이 클수록 무서운 이빨이 든 입을 쩍 벌려 상대를 한 방에 제압할 수 있어서다. 입이 크면 얼굴도 크기에 당연히 ‘얼큰이’가 대세다. 사촌인 호랑이와 사자들도 그렇다.

삶에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건 자연의 속성이다. 카멜레온 역시 마찬가지인데, 우연히 두 녀석이 한 나뭇가지에서 만날 때가 있다. 서로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는 데다 외길이다 보니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 한다. 누가 비켜줄까?

어디서나 알아서 양보하는 아름다운 일은 별로 없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이럴 땐 누구랄 것도 없이 슬쩍 몸을 틀어 옆모습을 보여준다. 몸 전체를 볼 수 있게 하면서 ‘나, 이런 사람, 아니 카멜레온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후 작은 쪽이 길을 내주는 게 이들의 ‘매너’다. 한 판 붙으면 진 쪽이 날개도 없이 추락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게 신상에 이롭기는 하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으로 처음 만난 상대를 평가하는 건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우리만의 특징인 말로 상대를 탐색하는데, 잘 보면 좀 더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우리는 “누구세요?”라고 했다. 출신이 중요한 시대라 정체, 그러니까 신분이나 소속 같은 걸 밝히라는 뜻이었다. 군대에서 낯선 존재가 나타나면 “누구냐?” 한 다음, “암호는?”이라고 하듯 말이다.

이랬던 인사말이 시대가 바뀌면서 “뭐 하세요?”로 변했다. 하는 일, 그러니까 직업이 중요한 능력 중시 시대가 되다 보니 평가 기준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사말이 또 바뀌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대기업 임원이 푸념을 했다. “요즘 ‘어디 사세요?’라고 묻는 후배들이 많아요. 우리 땐 능력 있는 선배를 우러러봤는데, 이제는 사는 곳으로 판단하나 봅니다.” 정말 사는 곳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도 괜찮을까? 사는 곳이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시대다.

#자연의 속성#카멜레온#상대 평가#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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