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친구는 아들에게 게임을 시켜줄 때마다 집에서 작은 분쟁이 인다고 말했다.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주말이면 영화 속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을 시켜주는데 아내의 눈총을 받는다는 하소연이었다. 친구의 아내는 비록 게임이라 해도 아들이 주말마다 광선검을 휘두르며 적군을 수십 명씩 베는 게 과연 교육적으로 옳으냐를 두고 따진다고 했다. 친구는 “어릴 때 영화 ‘쥬라기공원’을 보고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게임으로 ‘제다이’를 직접 조종하며 칼싸움을 하는 게 뭐가 다른가”라며 맞섰지만 혼만 더 났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은 친구와 친구 아내의 입장처럼 갈리는 게 보통이다. 과거엔 잔혹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그 사람이 즐기던 게임을 뉴스에서 언급하며 ‘폭력적인 게임을 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논리를 펴던 때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게임에 대한 인식이 훨씬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게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게임이 가지고 있는 산업적인 잠재력에 대한 인식 역시 여전히 제자리걸음으로 보인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외국에선 게임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이지만 한국에선 사행성, 과몰입 콘텐츠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무관하게 글로벌 게임 산업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에서 미국 소비자기술협회의 스티브 코닉 연구 담당 부회장은 올해의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게이밍을 언급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7년까지 전 세계 게임 소비자 지출은 방송이나 영화보다 많은 2150억 달러(약 27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한창 이슈인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의 종착지 중 하나도 결국 게임 산업이다. AI 개발의 결과물 중 업무용 툴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엔터테인먼트로 몰릴 것이고 AI로 줄어든(자의든 타의든) 업무 시간을 앗아오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질 것이다. 자율주행차에 게임이 접목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현재 국내 게임 업계의 상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국내 게임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은 자본과 인력을 무기로 자체 게임을 만들며 한국이 점유했던 시장을 앗아가고 있다. 게임 산업이 활력을 잃으며 인력 이탈 등으로 AI 개발인력 생태계 역시 흔들리고 있다. 산업의 한 축으로서 게임을 인정하고 지원해야 할 적기를 놓치게 될까 우려스러운 이유다.
물론 국내 게임 업체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이용자를 몰입시키기 위해 과금을 유도하던 기존의 수익 구조를 개선해 콘텐츠 자체로 승부를 걸어야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 다만 문제점이 있는 부분은 정밀 타격해 고치고 산업 전체적으론 진흥해야 한다. 게임도 수출 산업이며 중요한 일자리 시장이기 때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