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40만 원. 누군가에겐 근사한 한 끼 식사비용 정도일 돈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죽어야만 끝나는” 불법 사채의 지옥문을 여는 입장권 가격이었다. 50대 A 씨는 25만 원을 빌려 며칠 후 44만 원을 갚기로 했는데, 3개월 만에 1억5000만 원으로 불었다. 40대 B 씨가 빌린 40만 원은 1년 뒤에 6억9000만 원이 됐다.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잔혹했다. 강원경찰청은 일명 ‘강 실장 조직’으로 불리는 불법 사금융 범죄조직 123명을 붙잡아 주요 조직원 10명을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조직은 2021년 4월부터 최근까지 전국을 무대로 인터넷 대부 중계플랫폼을 통해 가정주부나 취업준비생, 영세상인 등에게 소액 단기 대출을 미끼로 연 5000% 이상의 이자를 뜯어냈다. 법정 최고이율인 연 20%의 250배가 넘는데, 여기에 매일 추가되는 연체료까지 붙였다. 총책인 실장을 중심으로 자금관리, 대출상담, 수익금 인출 등 역할을 나눠 맡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피해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131명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액은 최소 5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처음엔 수십만 원에서 시작한다. 잘 갚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빌려줄 수 있다고 한다. 30만 원을 빌리고 일주일 뒤 50만 원을 갚는 ‘30·50’ 대출이 사채시장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다. 돈을 제때 못 갚으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마법이 진행된다. 연체금이 발생하면 이를 원금으로 돌리고 여기에 이자를 더 붙인다. 일명 ‘꺾기’다. 다른 사채업자를 소개해줘 다중 채무자로 만들기도 하는데 알고 보면 한 팀이다. ‘한 바퀴 감는다’고 한다.
▷입금이 늦어지면 저승사자 같은 추심이 시작됐다. 처음에 절차상 필요하다고 가족, 지인의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데 이게 덫이었다. ‘사기꾼 현상수배’라는 전단지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아기 사진을 보내면서 살해 위협을 했다. 피해자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유산한 여성도 있고, 가정파탄 위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반면 범죄자들은 서울에서 월세 1800만 원 아파트에 살면서 고가 스포츠카를 타고 명품으로 치장하는 등 호화 생활을 누렸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급전이 필요한 경제적 취약계층을 노린 불법 사금융 피해가 늘고 있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들마저 대출을 걸어 잠그면서 지난해 최대 7만1000명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불법 사채업자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흉악범 수준으로 강화하는 한편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대출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단돈 몇십만 원 때문에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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