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필자는 수습기자를 마친 뒤 사회부에 배치돼 경찰을 출입하는 사건팀 기자가 됐다. 정식 기자가 됐다는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비슷한 시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현장을 몇 달 동안 취재해야 했다.
시위대는 취임한 지 몇 달 안 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독재 타도’, ‘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부정하고 독재라고 낙인찍는 ‘이른바 진보’ 진영을 보면서 쓴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진짜 독재정권이었다면 이들이 ‘독재’라고 마음대로 외칠 수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일부는 폭력 시위로 변질돼 갔다. 사전적 의미에 맞지도 않지만 대안이 없어 그대로 쓰고 있는 표현이 진보 대 보수다.
역사는 15년이 지나 반복되고 있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비슷한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광우병 괴담처럼 오염수 괴담과 가짜뉴스도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은 먹거리에 예민한 민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나섰고, 일부 단체는 거리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독재’라는 주장에 박수를 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과장된 구호로 여길 뿐이다. 이를 두고 민도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지난주 행정안전부는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불참했다. 기념식을 주관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대통령 퇴진 주장 단체를 후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업회는 “해당 단체가 협의 없이 정치적 내용을 포함했다. 후원금은 집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행안부는 요지부동이었다. 6·10민주항쟁이 200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뒤 줄곧 행안부가 주최하고 사업회가 주관하던 기념식의 전통이 깨졌다.
주최자인 행안부와 여당 지도부가 불참하면서 행사는 싱겁게 끝났다. 지난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하고 이준석 당시 여당 대표가 참석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행안부의 불참은 과거 정부에서 시민단체에 준 보조금 상당수가 부정 집행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윤 대통령 및 대통령실의 생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행안부의 행사 주관이 관행이 아니라 법 규정 사항이란 것이다. 대통령령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행안부는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안 지켰을 경우 벌칙 조항은 없다. 하지만 법령에 규정된 업무를 하지 않은 것은 엄연한 직무유기다.
행사 불참을 행안부 혼자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유관 단체의 사소한 실수로 주최자가 행사에 빠진 건 자기부정이다. 일부 보도를 문제 삼아 기자를 공군 1호기에 못 타게 한 것처럼 ‘길들이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옹졸하다”는 야당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진보’와 ‘뒤끝 정부’는 현행 헌법을 탄생시킨 1987년 6·10민주항쟁의 의미와 정신을 진정 존중하고 계승하는 걸까. 그랬다면 괴담을 앞세운 시위도, 민주항쟁 기념식 불참 해프닝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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