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혁신위 출범했지만 혁신 방향·과제 동상이몽
혁신위, 갈등해소 아닌 새로운 갈등 시작일수도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은 문재인 당시 대표가 당 대표가 된 지 두 달 만에 치른 4·29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지역구 4곳 모두 패배했다. 이듬해 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시기인 만큼 문재인 리더십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친노 패권을 정조준한 비문재인계는 대표직 사퇴를 요구하며 포문을 열었다. 문 전 대표는 격화되는 내분 수습을 위해 김상곤 혁신위원회를 내놓았다.
김상곤 혁신위는 총선을 앞두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공천 규정부터 손을 댔다. 공천 등 당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제를 폐지하는 등 과감한 수술에 나섰다. 그러나 혁신위는 갈등 봉합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었다. 안철수 등 비문 진영은 혁신위 차원이 아닌 ‘혁신 전당대회’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탈당을 결행했다. 이들이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야권은 분열됐다. 문 전 대표는 다급하게 김종인 비대위를 띄워 원내 1당은 됐지만 집권 새누리당과 의석 차이는 겨우 1석에 불과했다. 집권 새누리당이 ‘진박 공천’ 논란으로 적전 분열하지 않았다면 원내 1당도 어려웠을 정도로 간발의 승리였다. 오랜 핵심 기반인 호남권에선 안철수 국민의당에 사실상 완패했다.
8년 만에 혁신위의 데자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도 출발점은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 총선 전 지도체제 위기 발생→주류-비주류 갈등 격화→혁신위 구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8년 전엔 선거 패배가 도화선이 됐지만 지금은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함께 김남국의 코인 투기 논란, 팬덤 정치 등 도덕성 문제가 쟁점이다.
혁신위가 파괴적 혁신의 전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당 지도부의 그림자를 100% 지울 순 없을 것이다. 김상곤 혁신위가 독자 노선을 걸었다고 하지만 혁신위에 참여한 친문 핵심 조국의 위상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김은경 혁신위도 결국 이 대표가 띄웠다. 혁신위의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혁신위는 주류와 비주류 갈등 전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혁신위는 친명-비명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중간역일 뿐 종착역은 아니다. 내부 계파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고 봐야 한다.
혁신 논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친명-비명 간 난타전은 날이 서 있다. 이 대표가 잇단 도덕성 위기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고 말하자 비명계 의원들은 “대표직 사퇴가 책임지는 자세”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사퇴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표직 거취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친 셈이다.
혁신위 과제를 둘러싼 생각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당내에선 도덕성 논란을 극복할 지도부의 과감한 희생과 결단을 기대하고 있지만 친명 진영의 기류는 다른 듯하다. 오히려 혁신위에서 혁신당원 20만 명을 키워낸다는 ‘20만 양병설’이 그럴듯하게 나돈다고 한다. 이 혁신당원들이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깨면서 민주당의 새 판을 짜겠다는 취지다. 만약 이런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비명계는 “사실상 친위 쿠데타”라고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이 대표 측은 혁신위를 기반 삼아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이재명당’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강한 듯하다. 8년 전엔 안철수 신당 카드로 당 지도부를 압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비명계가 이 대표를 대체할 만한 거물급 대안을 낼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젠 밀리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이 대표의 벼랑 끝 정치다. 혁신위 출범으로 새로운 갈등의 문이 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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