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국제도시에서 2016년 5월 공급된 공동주택 용지는 600 대 1 이 넘는 입찰 경쟁률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추첨을 통해 이 땅을 가져간 곳은 한 증권사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였다. 당시 중견 건설사들이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 곳의 위장 계열사를 동원해 공공택지 입찰에 중복 참여했는데, 이 증권사가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해당 증권사는 30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전국 곳곳의 택지 입찰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입찰 방식이 ‘벌떼 입찰’이라고 불리며 문제가 되자 얼마 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일정 수준의 주택건설 실적과 시공능력을 갖춘 업체만 참여할 수 있도록 청약 자격을 제한했다. 이를 통해 금융사가 세운 위장 건설사는 퇴출될 수 있었지만 건설사들이 만든 위장 계열사들은 걸러내지 못했다. 도심 재개발·재건축에 비해 저렴하게 공급되는 공공택지는 당첨만 되면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낼 수 있는 ‘슈퍼 로또’로 인식되다 보니, 벌떼 입찰이 건설업계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9월 ‘벌떼 입찰 근절 방안’을 내놨다. 추첨에 참여할 수 있는 모기업과 계열사 수를 1필지에 1개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맞춰 국세청도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사들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정부 5년 동안 호반·대방·중흥·우미·제일 등 5개 건설사가 LH가 분양한 공공택지의 37%를 가져갔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다. 이 중 호반건설은 LH 택지의 10분의 1을 싹쓸이했다.
▷작년만 해도 벌떼 입찰에 “검토가 필요하다”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공정거래위원회가 그제 호반건설을 대상으로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호반건설이 유령회사에 가까운 계열사를 만들고 협력사까지 동원해 공공택지 23개를 낙찰 받은 뒤, 회장의 두 아들이 소유한 회사들에 넘겼다는 것이다. 이 덕에 2세 회사들은 6조 원에 가까운 분양 매출을 올린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부당 지원과 일감 몰아주기로 2세 회사들은 단기간 급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도 쉽게 이뤄졌다.
▷문제는 편법으로 공공택지를 독과점한 건설사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벌떼 입찰이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두 달 전에도 벌떼 입찰에 나선 건설사 19곳을 추가 적발했는데, 서류상으로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곳이 수두룩했다. 시장이 공정하게 운영되지 않으면 권력과의 유착이나 탈세 같은 비리가 생겨나고,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개발 이익을 독식하는 벌떼 입찰을 서둘러 뿌리 뽑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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