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갈수록 억측만 쌓여가는 국정원 1급 인사 번복 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7일 00시 00분


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현안 질의를 기다리고 있는 김규현 국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현안 질의를 기다리고 있는 김규현 국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던 국가정보원 1급 인사 번복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인사를 철회한 건 해외파트 핵심 요직인 주미 대사관과 주일 대사관의 정무2공사에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 A 씨와 함께 근무했던 국내 정치과 출신들이 임명되는 등 A 씨가 인사에 과도하게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업무 국장급(1급) 자리에도 A 씨의 입직 동기가 초특급 승진으로 올랐다고 한다.

A 씨가 단순히 자신과 연(緣)이 있는 사람들을 원장에게 추천한 정도를 넘어 그들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이라 문제가 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능라도 경기장 연설의 국정원 버전을 써준 사람과 박근혜 정부에서 당시 원장을 건너뛰고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문 정부에서 임명된 1급 간부를 전원 대기 발령한 뒤 1급뿐만 아니라 2, 3급까지 대거 교체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재가 뒤 번복’이란 사태가 빚어지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전 정권에서 중용된 간부들을 다 솎아내고도 외부에서 온 외교관 출신 국정원장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내부 관계가 복잡하거나 전 정권에서 중용된 간부들이 철저히 물갈이되지 않았다고 보는 강경파가 국정원을 흔들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에는 대통령이 내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꽂아 놓은 측근 검사 출신이 있다. 정권 초 조상준 전 차장검사가 기획관리실장으로 임명됐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원장을 건너뛰고 직접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냈고 이후 다시 김남우 전 차장검사가 그 자리에 임명됐다. 검사 출신 실장이 연속 임명되면서 그들 스스로 국정원 내부 정보를 제공받는 특정 인맥을 갖게 됐고, 이것이 국정원 인사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실 팻말에도 쓰여 있듯 국정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진다. 마찬가지로 각 부서의 책임은 부서의 장(長)이 진다.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잘못된 인사안을 올렸다면 그 책임자는 A 씨가 아니라 원장이다. 인사를 문제 삼고자 한다면 원장을 건너뛰고 번복할 게 아니라 원장의 책임부터 묻고 번복해도 번복해야 한다. 이 순서가 뒤바뀌어 있으니 조상준 사직 사태 때처럼 갈수록 억측만 쌓여가고 국민들은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정원#1급 인사#번복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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