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의 ‘보임안서’ 중에서
기원전 97년 사형수 신분의 마흔아홉 한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궁형을 자청했다. 사형보다 더 치욕스럽다는 궁형을 자청한 까닭은 미처 못다 한 말, 즉 평생을 준비해 온 역사서를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을 확률 20%에 도전한 무모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하늘조차 그를 데려가지 못했다. 그의 의지가 하늘을 감동시켰다.
이듬해 지천명 오십의 사내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그에게 씌워졌던 반역죄가 무고였음이 밝혀졌다. 세상에 이런 억울함도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억울함과 울분을 마지막 남은 일, 역사서를 쓰는 일에 쏟았다. 기원전 90년, 그의 나이 55세 무렵 역사서는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오래전에 부쳐온 입사 동기 임안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썼다. 역사서에다가는 밝힐 수 없었던 궁형을 전후로 한 자신의 심경, 역사서를 끝내야만 했던 까닭,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격정적으로 밝혔다. 이 글이 중국 10대 문장의 하나로 꼽는 ‘보임안서’이고, 그가 죽음과 바꾸면서까지 완성하고자 했던 역사서가 바로 ‘사기(史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이름은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년∼기원전 90년)이었다.
사마천은 지독한 고통, 고독, 고뇌 속에서 위대한 생사관을 터득했다. ‘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서 ‘고귀한 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사마천의 이 위대한 생사관을 통해 탄생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지도층에 던지는 귀중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려면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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