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쉬울 리 없다. 영감이 오길 기다려야지, 작업물에 몰두해야지, 필요한 경우 정부나 지자체 예술가 지원 사업에 서류를 넣을지 고민도 해야 한다. 사업기획·지원서 및 증빙 서류 처리로 머리를 싸매는 것도 적잖은 예술가들의 중요 일과다. 사실 예술 그 자체만큼이나 지원 사업을 비롯한 예술가의 삶을 둘러싼 조건과 환경 속에서 예술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자주 돌출된다.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지자체 문화재단 사업과 축제 수의계약을 둘러싼 딜레마를 다룬다. 예술과 제도의 민낯을 경쾌한 코미디 톤으로 풀어낸다.
행사·축제 기획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를 기리기 위해 망진군청이 주최하는 지역 축제 ‘정조문화제’를 준비하던 중, 축제 하루 전 행사 타이틀과 콘셉트가 ‘연산군문화제’로 갑작스레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망진군수가 다른 역대 조선 왕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정조 대신 폭군 연산이 지자체 홍보엔 더 낫다고 봤기 때문이다. 군수는 수도권과 가깝다는 걸 부각하려고 연산군이 한양에서 이 가상의 지자체를 자주 들렀다는 가짜 스토리텔링까지 덧입힌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행사는 점점 당초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꼬인다. 축제 클라이막스였던 정조 연극은 돌연 ‘갑자사화의 형식을 빌린 팬데믹 종식 선언’으로 바뀐다. 연극을 맡기로 한 지역 극단은 갑작스럽고도 무리한 콘셉트 변경에 학을 떼더니, 마침 망진문화재단 예술지원사업에서 탈락했다는 문자를 받자 아예 축제 보이콧을 선언한다.
게다가 혜수의 남자친구이자 대행사 이사 상민이 섭외한 초청 가수는 오지 않는다. 예전에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한 극작가 직원 래오가 스태프 업무로 불려오는데, 툴툴대다가 일을 망친다.
여기에 망진군에서 벗어날 생각밖에 없는 지역 알바생 은채는 인턴을 거쳐 정직원이 되려고 의욕과다 상태다. 군청에서 다음 축제 기획 사업까지 따내야 하는 혜수는 군수 눈치를 보면서 중간에서 난장판을 조율해야 한다. 어떻게든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만 한다.
영화에선 대행사 대표는 대표대로, 스태프와 연극 배우들은 또 그들대로 개인 해법을 찾는 사람들로 설정돼 있다. 축제 자체의 본질은 차라리 부차적이고, 자기 살길을 모색하는 과정만이 담긴다. 지역 축제와 지역 극단 예술 모두 공동체 감각을 기초로 둬야 한다는 명제에서 아득히 멀어진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당장은 자기 삶을 도모하는 것 외엔 다른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비루한 삶의 격차를 좁힐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느끼는 건 애환이다.
자기 목표를 향해 의심 없이 꿋꿋하게 진군하는 군수와 상민에겐 애환이 없다. 예술과 삶의 격차를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건 대행사 전 직원이자 극작가로서 예술을 지향하는 래오다. 지역 극단을 향해 결국 돈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 냉소하지만, 그 역시 혜수의 표현대로라면 직장인으로선 무능하고, 예술가로선 불성실하다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얽히고설킨 예술가의 딜레마다.
이쯤에선 영화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면서,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만의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점차 초라해지고, 또 해법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는 무대를 만들고 어떤 배역이든 조금이라도 의미를 찾아내는 지역 극단 대표의 모습을 비춘다. 저마다의 개인 해법과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은 막막하고 안쓰럽지만, 그래도 삶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일까. 축제가 계속돼야 하듯 말이다.
영화 초반은 블랙코미디에 가깝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여기 나오는 저마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뾰족하던 톤은 점차 둥글어진다. 이는 예술이 삶을 이해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지지만, 유머가 무뎌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해는 된다. 영화가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암시하는 만큼,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미워하거나 조롱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농담을 던진다. 삶은 계속되고, 그게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유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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