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 트렌드 중 판다가 있다. 2020년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아기 판다 ‘푸바오’와 그 부모 판다인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인기는 여느 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다. 5월 마지막 주에는 일평균 7000명이 판다를 보러 에버랜드까지 왔다고 한다. 요즘 대중적 인기의 척도 중 하나는 TV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이다. 지난달 17일에는 판다 가족 사육사가 출연했다.
유명인 애호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면에서 푸바오 가족의 인기와 애호 행태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유명인들에게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는 팬들이 따라붙는다. 판다에게도 그 팬이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판다 팬들이 직접 촬영한 ‘직캠’(직접 촬영한 영상콘텐츠)이 넘쳐난다. 팬들은 직캠 등을 통해 자신이 애호하는 대상의 데이터를 획득한 후 그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판다도 분석된다. 다른 나라에 사는 판다에 비해 푸바오의 미모가 특별히 뛰어나다거나, 아이바오와 푸바오의 귀 모양을 ‘양송이 귀’라며 좋아한다거나. 팬들이 유명인의 온갖 사소한 부분까지 뜯어보고 칭송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판다가 인기를 얻은 과정도 오늘날의 유명인 서사와 비슷하다. 판다 세 마리, 그리고 ‘판다 가족’으로 묘사되는 사육사들까지, 이 모두에게는 가족 드라마적 서사가 있다. 가족 드라마는 보편적 인기 드라마다. 국내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가족을 이야기할 때 늘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미남 미녀와 가족 드라마가 겹쳐지면 인기 확률도 높아진다. 판다는 오죽하겠는가.
판다의 인기가 생기고 확산되는 과정마저 시대적이다. 판다의 가족드라마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산된다. 에버랜드 공식 채널과 ‘말하는 동물원 뿌빠 TV’ 채널에는 400여 개의 판다 영상이 있다. 부모 판다가 한국 입국을 준비하는 모습, 아기 판다 푸바오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지금까지의 모습. 모두 영상 기록으로 남아 있다. ‘동물농장’ 같은 타 채널에서 촬영한 영상까지 합하면 판다 콘텐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많은 자체 콘텐츠가 팬을 끌어들인다. 2010년대 K팝 아이돌 비즈니스 모델이 증명한 공식이다. 이 공식은 판다에게도 유효했던 것이다.
판다가 딱 적당히 낯선 캐릭터라는 것이 판다 인기의 마지막 방점이다. 판다는 익숙한 동물이다. 이들 특유의 생김새는 모두 안다. 다만 판다는 길고양이처럼 흔한 동물이 아니니 그들의 자세한 생활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판다의 얼굴이 익숙해서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의외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판다에게 더 빠져들게 된다. 유명 판다만 있고 유명 바다표범이나 유명 독수리는 없다는 점에서, 판다의 낯익은 생김새가 지금의 인기에 영향을 준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판다가 콘텐츠의 최종 진화형 아닐까. 사람들이 어떤 열광을 해도 판다는 말없이 반쯤 누운 채 죽순을 먹는다. 판다들이 귀여운 척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사람들이 귀엽게 여긴다. 판다가 논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실망시킬 일도 없을 것이다.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한편 고민되기도 한다. 그저 귀엽고 무해한 콘텐츠가 콘텐츠의 최종 진화형이라면, 세상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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