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본시장 범죄는 ‘남는 장사’다.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겨도 기껏해야 몇 년 징역형을 살면 되고, 벌금도 푼돈에 그친다. 모범수가 되면 가석방까지 돼 빼돌린 돈으로 호의호식하면 된다. 회계사 출신의 한 기업사냥꾼 사례는 증권가에서 유명하다. 6년간 7건의 증권 범죄에 가담해 수백억 원을 챙겼지만 여태 확정된 처벌은 800만 원 벌금형에 불과하다. 그는 심지어 코스닥 상장사의 부정거래, 배임 등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 도중 쌍용차 매각 과정에 뛰어들어 주가를 띄우고 ‘먹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 범죄의 다수를 차지하는 3대 불공정거래(시세조종, 부정거래,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해 현재 형사 처벌만 가능하고 별도의 금전적·행정적 제재 수단이 없는 탓이 크다. 형사 처벌마저도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돼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기까지 평균 2∼3년씩 걸리는 데다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중이 40%가 넘는다. 이렇다 보니 주가 조작범이 자본시장으로 돌아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허다하다.
▷SG증권발 주가 폭락과 비슷한 5개 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며칠 전 발생했는데, 배후로 지목된 온라인 주식투자 카페 운영자 강모 씨도 ‘전력’이 있다. 그는 2014년 2월부터 카페 회원 등과 함께 거래량이 적은 4개 종목을 찍은 뒤 1년 반 동안 무려 1만111차례 사고팔며 주가를 조작했다. 4개 종목엔 이번에 폭락한 대한방직도 있었는데, 당시 주가는 3만 원대에서 15만 원대로 치솟았다. 이 같은 시세조종으로 강 씨는 지난해 말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벌금 4억 원을 확정받았다.
▷‘솜방망이’ 형사 처벌과 별개로 증권 범죄자의 주식 거래를 차단하는 장치가 있었다면 강 씨의 재등장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미 선진국들은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에 금융당국의 제재만으로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금융 거래를 막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에선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으로 꼽히는 바이오기업 ‘테라노스’ 창업자에 대한 형사 재판이 작년 1월 끝났지만, 앞서 2018년 금융당국이 50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10년간 상장사 취업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
▷한국 금융당국도 지난해 불공정거래를 한 사람의 금융투자 거래를 최대 10년간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에서 잠자고 있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에 대해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물리는 법안도 2년 넘게 계류돼 있다가 4월에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 문턱을 넘었다. 증권 범죄는 개미들을 약탈하고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다.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일벌백계하는 법안들이 서둘러 도입돼야 한다. 불공정거래가 더 이상 남는 장사가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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