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상준]“매일매일이 무두절”… 선관위원장 상근으로 바꿔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0일 23시 49분


한상준 정치부 차장
한상준 정치부 차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에 설치 근거가 명시된 헌법기관이다. 국회, 법원, 대통령실 등도 헌법기관이다. 만약 헌법기관을 없애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반면 법무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는 헌법이 아닌 정부조직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수시로 부처 개편 등이 가능하다.

대다수 헌법기관의 수장은 출근을 한다. 국회의장은 국회로, 대법원장은 대법원으로,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출근한다. 상근(常勤)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시간 동안 근무하는 게 상근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다. 현직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선관위원장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헌법기관장 중 비상근인 건 선관위원장뿐이다. 중앙선관위처럼 각 지역의 선관위 역시 관할 지역 법원장이 비상근으로 겸직한다.

대법관 본연의 업무에 더해 선관위원장 일까지 해야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소쿠리 투표’ 논란이 벌어졌던 지난해 3월 5일, 당시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 없었다. 다른 선거도 아니고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투표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조직의 수장이 출근조차 안 한 것.

이런 선관위를 두고 여권 관계자는 “매일매일이 이른바 ‘무두절(無頭節)’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전직 선관위 고위 인사도 “위원장은 밑에서 올린 대로 결재만 할 뿐 조직 운영, 업무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 자연히 조직은 직원들의 마음대로 돌아갔다. 선관위 직원이 정식 경력 채용 공고가 나기도 전에 자녀에게 채용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자녀는 지원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고 쓰고, 아버지의 동료 직원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아빠 찬스’ 논란에 더해 ‘형님 찬스’까지 벌어졌지만 당초 선관위는 중립성, 독립성을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했다. 그런데 앞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가 선관위 상임위원이 되고, ‘내로남불’ 문구가 담긴 현수막은 걸 수 없다고 한 건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결정이었나.

여론의 압박에 결국 선관위는 ‘아빠 찬스’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로 했다. 이어 출범 60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국정조사도 앞두고 있다. 선관위 설립 이후 가장 큰 위기 상황이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대대적인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 역시 선관위에 대한 질타를 뛰어넘어 선관위가 더 확실하게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선관위원장을 상근으로 전환하고, 선출 방법도 손봐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다. 우리 국민은 보통·평등·비밀·직접선거가 갖는 투표의 힘을 믿고, 그 결과도 인정한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져 선거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선관위가 달라져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무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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