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제로 코로나’ 해제 이후에도 경기 부진이 계속되자 20일 중국은 열 달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지난달 중국의 수출은 석 달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부진한 경제지표에 각종 기관들은 일제히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의 회복은 한국 수출의 믿을 구석 중 하나였다. 중국의 수요가 늘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요도 따라서 증가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중국이 회복세를 보이더라도 이번에는 과거처럼 강한 수준의 수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점점 한국의 수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 ‘반도체 착시’ 걷어내면 재작년부터 대중 적자
한국 경제에 있어 중국의 존재는 벼락처럼 다가온 축복이었다. 한중 수교 직전인 1991년 10억 달러였던 한국의 대중 수출은 30년 후인 2021년에는 162배로 증가했다. 수교 첫해인 1992년을 제외하곤 지난해까지 대중 무역수지는 줄곧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양국의 분업 구조는 수출용 생산기지가 필요한 한국과, 기술이 필요한 중국 모두에 윈윈이었다. 한국에서 부품 등 중간재를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이를 조립해 완제품을 미국 등 세계로 공급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의 고도성장에 한국도 과실을 함께 누렸다.
양국의 협력 구조는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갈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며 변화를 맞았다.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해 5월부터 적자로 돌아서 지난해 9월 한 달만 빼고 지난달까지 계속 적자를 보이고 있다. 대중 수출은 5월까지 12개월째 감소세다.
그래도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후유증을 회복하고, 중국의 무역 보복 조치가 해소되면 대중 수출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올해 한국 경제를 ‘상저하고’로 전망한 근거 가운데 하나도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점차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무역흑자를 거뒀던 호시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중 무역수지는 2013년 628억 달러 흑자를 정점으로 이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정도 주기로 150억∼200억 달러씩 줄고 있다. 이마저도 2017, 2018년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효과인 측면이 크다. 대중 수출은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 왔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 수출은 2013년 1251억 달러에서 지난해 1059억 달러로 꾸준히 하락해 왔다. 반도체를 제외한 품목의 무역수지는 2021년에 이미 9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 232억 달러 적자로 낙폭을 키웠다.
● 中, 내수·자립형으로… 설 자리 없는 韓 중간재
대중 수출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단순히 경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산업구조가 자립·내수형으로 고도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과거 중국은 반도체, 기계설비 등 중간재를 들여와 완성품을 만들어 파는 구조였는데, 점차 중간재를 자체 생산하면서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할 몫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 5대 무역강국 가운데 중국의 수출 증가율(7.0%)은 미국에 이어 2위였지만, 수입 증가율(1.1%)은 가장 낮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분석 결과 중국의 디스플레이 수출 자립도는 2015년 ―0.137에서 지난해 0.899로 올랐다. 1에 가까울수록 수출 자립도가 높다는 뜻인데, 이 정도면 수입 없이도 스스로 완성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이차전지는 0.595에서 0.931로, 자동차 부품은 0.421에서 0.619로 오르는 등 전반적으로 자립도가 높아졌다. 이제는 반대로 배터리 등에서 중국의 중간재가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의 산업 구조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올해 들어 전기차, 리튬배터리, 태양전지 등이 수출 주력 품목인 ‘신싼양(新三樣)’으로 불릴 정도로 질적 고도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모습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저위 및 고위기술 제조업 모두에서 중국의 교역 경쟁력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며 “대중 교역 구조 전반을 재검토해 수출 전략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열풍 등은 한국 소비재의 설 자리를 좁게 하고 있다. 중저가 시장은 상품성이 개선된 중국 자체 브랜드에 장악됐고, 프리미엄 시장은 중국인들이 선망하는 글로벌 톱 브랜드만 살아남았다. ‘가성비’를 앞세웠던 한국 제품들이 선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3년 18.7%에서 지난해 1%대로 급락했고, 같은 기간 한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도 8.9%에서 1.6%로 쪼그라들었다. 마땅한 중국 내수기업이 없던 상황에서 ‘한류’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휩쓸었던 한국 화장품은 이제 퇴출 위기에까지 몰렸다.
● 중국 의존도 낮추고, 글로벌 시장서 통할 상품 키워야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6.8%에서 올해 1분기(1∼3월) 19.5%로 줄었다. 그 빈자리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인도, 미국, 호주 등이 채워 가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제1 교역국이자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14억 인구의 거대 소비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대중 수출 부진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낮추면서 적극적으로 수출 시장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중국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기 위한 노력과 새로운 수출 시장 개척을 위한 탐색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 시장의 변화에 오래전부터 대비해 왔고, 최근 들어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중 수출은 2021년 대비 4.4% 줄었지만 중국을 제외한 시장으로의 수출은 9.6% 늘었다. 2021년 이후 이차전지, 석유제품,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부품, 디스플레이, 플라스틱 제품 등의 분야에서는 중국 수출 의존도가 3%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자동차는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을 2017년 7.1%에서 지난해 11.0%로 높이며 선전하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를 찾는 과정에서 특정 지역에 치중하거나 과거 중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손쉽게 중간재를 팔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베트남은 지난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 되면서 중국 대체시장으로 주목받았지만 올해 들어 흑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으로 줄었다. 반도체 수요 위축 등의 한파를 피하지 못한 데다 베트남의 중간재 수출 자립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조의윤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베트남의 경우 중국과 유사점이 많아 기술력 향상을 위한 기업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장기적으로 수출 시장 다변화에 유리하다”고 했다.
결국은 어디에 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파느냐가 중요하다. 상대국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고부가가치 중간재, 글로벌 시장 어디에서든 통할 수 있는 프리미엄 소비재를 발굴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가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수출 유망 품목을 집중 육성하고, 적극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무늬만 선진국이 아니라 산업 및 무역 구조도 진짜 선진국형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철저한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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