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지난해 11월 ‘알박기 인사’를 막기 위해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법 개정을 연말까지 마치기로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의 임기 문제로 소모적인 갈등이 반복되는 데는 대통령과 기관장의 임기가 각각 5년, 3년으로 다른 점이 주된 이유라는 문제의식이었다.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 개정안에는 기관장의 임기를 2년 6개월로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둘의 임기가 함께 끝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개정안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건 공공기관장 해임 건의였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2022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역대 최다인 5명의 기관장이 해임 건의 대상에 올랐다. 경영평가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아주 미흡(E)’을 받았거나 2년 연속으로 ‘미흡(D)’ 등급을 받은 곳의 기관장들이다. 경고를 받은 기관장까지 포함하면 총 17명에게 인사 조치가 내려졌다. 이들 중 16명이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됐다.
문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은 올 4월 말까지도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그 가운데는 전 정부 초기 정부 부처 외청 한 곳을 이끌었던 A 씨도 포함돼 있다. 그는 2020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뒤 2021년 연봉 2억5000만 원이 넘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다시 꿰찼다. 해임 건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A 씨 임기는 10개월 더 남았다.
문제는 그가 전문성보단 근무연으로 에너지 공기업 사장에 올랐다는 것이다. 2017년 A 씨는 자신이 외청장을 맡게 된 사연을 “청와대에서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아야겠다고 판단하고 검사 출신을 보내자고 결정한 후 찾다 보니 내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가운데서도 후보군에 올랐던 건 “내가 모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A 씨는 문 전 대통령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일 때 함께 일했다. 검사였던 그의 경력에 에너지 관련 경험은 찾아볼 수 없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주요 정책 수단 가운데 하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 예산은 112조4000억 원이다. 5년 전보다 42조6000억 원 불어난 규모로, 올해 정부 총지출의 17.6%를 차지한다. 일부 전문성이 우선시되는 곳을 제외하곤 정부와 손발이 맞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기관장이 필요하다고 하는 걸 단순히 ‘찍어내기’라고만 볼 순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일괄적으로 기관장을 교체하면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자율성 보장 등 기관장 임기를 법으로 정해 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정부와 철학을 달리하는 공공기관장들이 새 정부가 가자고 하는 방향으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게 국가 경영 전체로 보면 효과적이냐”고 물었다. 여당에선 1년이 지나 알박기 인사들의 임기 만료도 가까워진 만큼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유불리를 떠나 국회에서 모든 쟁점을 펼쳐 놓고 다시 제대로 답을 찾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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