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걱정 모르는 어린 아들, 앉으나 서나 내 옷자락을 잡아끈다. 아이에게 막 화내려는 참에, 철없는 애 아니냐며 마누라가 말린다. 애도 아둔하지만 당신은 더하구려. 즐기면 되지 무슨 걱정이시오. 이 말에 창피해서 돌아와 앉았는데, 술잔 씻어서 내 앞에 내놓는다. 그 옛날 유영(劉伶)의 부인보다 훨씬 낫구나. 구질구질 술값을 따졌다던데. (小兒不識愁, 起坐牽我衣. 我欲嗔小兒, 老妻勸兒癡. 兒癡君更甚, 不樂愁何為. 還坐愧此言, 洗盞當我前. 大勝劉伶婦, 區區為酒錢.)
- ‘어린 아들(소아·小兒)’·소식(蘇軾·1037∼1101)
대문호의 집안에서 벌어진 아기자기한 해프닝. 세상 걱정 없는 철부지 아이는 아빠만 보면 졸졸 매달린다. 일에, 인생살이에 지친 아버지는 아이에게 들볶이는 게 때로 성가시고 짜증스럽기도 하다. 그런 낌새를 알아챈 아내의 타박. ‘애는 철부지라 그렇다 치고 세상에 즐길 것도 많은데 굳이 얼굴 찌푸리고 살 게 뭐람’ 하는 핀잔이다. 뒤이어 술잔을 내놓는 아내의 마음새에 시인은 금세 누긋해진다. 음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전통적 예법에 반기를 들었던 위진 시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 그중 하나인 유영(劉伶)은 ‘주덕송(酒德頌·술 예찬론)’을 지어 ‘오직 음주에만 힘을 쓰니, 어찌 다른 일을 알겠는가’라 할 정도로 술에 탐닉했다. 유영의 아내가 술을 내다 버리거나 술병을 깨트렸다는 일화는 전해지지만, 그녀가 ‘구질구질 술값을 따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내의 뜻밖의 대접에 놀란 동파가 상상력을 발휘해 본 건지도 모른다.
동파가 음주와 관련된 시를 적잖이 남기긴 했어도 주량이 그리 세지는 않은 듯하다. ‘내 주량은 지극히 적지만 술잔 드는 것만으로도 늘 즐겁다’고 했고, 바둑, 음주, 노래 이 셋만은 남보다 못하다는 걸 자인한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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