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파이 이야기’ 영감 얻은 얀 마텔
휴학해 영화만 본 황동혁… 삶 방향 찾는 시간
“솔직히 ‘파이 이야기’는 아무도 안 읽을 줄 알았어요.”
2002년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를 쓴 얀 마텔 작가(60)가 말했다. 이달 초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파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를 밝히다 이렇게 털어놓으며 웃었다. ‘파이 이야기’는 50개국에서 1200만 권 넘게 판매됐고, 리안(李安) 감독이 소설을 바탕으로 연출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3년)는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배가 침몰해 인도 소년 파이가 호랑이와 보트를 타고 227일간 태평양을 표류한 일을 그린 소설은 아슬아슬한 모험,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냉철하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든 성찰, 놀라운 반전을 지닌 걸작이다.
캐나다 트렌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마텔은 20대에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치과 의사가 되는 게 어때?’라며 여러 일에 대해 한마디씩 했어요. 하지만 직업을 갖는 게 두려웠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춤, 악기, 그림 등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거든요.”
그러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다리며. 어느 날 인도를 여행하겠다는 한 여성을 따라 무작정 인도로 갔다.
“인도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수중에 돈도 별로 없어서 캐나다보다 물가가 싼 곳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덮쳐 전기 충격기에 맞은 것 같았어요.”
그는 인도에서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 글을 썼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죽어버린 이야기’를 접고 느릿느릿 지내다 보니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에는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까지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었어요. 원숭이는 수시로 나타나 바나나를 낚아채 가는가 하면 도마뱀도 자주 출몰하고 코끼리도 볼 수 있었죠. 동물원이 아니라 일상에서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 파이, 동물원을 운영하는 파이의 부모, 보트에서 파이가 호랑이를 경계하면서도 어느덧 의지하게 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쫓아간 그 여성과 잘되지는 않았다”고 웃으면서 “인도에서 ‘파이 이야기’의 단초를 얻었고 문장을 써 나가는 게 즐겁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유명한 황동혁 감독(52)도 대학 때 영화만 보며 지낸 적이 있었다. 서울대 신문학과를 다닌 그는 “휴학을 한 학기 했지만 수업도 거의 안 들어가고 1년 넘게 휴학생처럼 살았다. 매일 비디오를 빌려 영화를 2개씩 봤다”고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지인에게서 받아온 비디오카메라로 재미 삼아 학교 축제, 농활 등을 찍고 상영했다. 사람들이 이를 좋아하는 걸 보고 “영상을 찍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구나”라고 느끼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들이 세계적인 소설가, 감독이 된 건 재능과 노력 그리고 행운까지,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 하나.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던 그 시간 역시 지금의 이들을 만드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스스로를 살펴보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이정표를 발견하게 했으니.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무위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유럽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전 1년간 여행, 봉사 등을 하는 ‘갭 이어’가 보편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런 시간이 생산적인 결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나에 대해 알아가고 생각을 다지는 건 나이에 상관없이 필요하다.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마텔의 말에서 여백의 시간이 주는 힘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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