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보다 못하다.’ 한때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질타할 때 쓰였던 말이다. 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이 2015년 발표한 국가경쟁력 금융 부문에서 한국이 87위, 우간다가 81위에 오르면서다. 당시 WEF의 평가가 기업인 설문조사 위주로 진행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결과를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금융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후 WEF가 통계지표 반영 비중을 높이면서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껑충 뛰었다.
▷국가경쟁력 외에도 WEF가 매년 국가별로 순위를 매기는 것 중 ‘성 격차(Gender Gap) 지수’라는 게 있다. 경제 참여·기회, 교육 수준, 건강, 정치 권한 등 4가지 항목에서 남녀평등 정도를 평가해 지수화한 것이다. 그런데 WEF가 그제 발표한 성 격차 지수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105위에 그쳤다. 지난해보다 여섯 계단 하락한 것이자 아프리카 세네갈(104위)보다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르완다가 12위였다.
▷여성의 지위와 권한 자체가 아니라 ‘성별 격차’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남녀 모두 수치가 낮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남녀 차이가 큰 한국이 뒤로 밀린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107위), 일본(125위) 등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하위권에 몰렸다. 반면 ‘육아 천국’, ‘복지 천국’으로 꼽히는 북유럽의 아이슬란드·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과 뉴질랜드는 1∼5위를 휩쓸었다. 이들 국가가 90% 안팎 수준으로 남녀평등을 실현했다면 한국은 68% 수준으로 평가됐다.
▷여성 인권의 절대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WEF 평가를 깎아내릴 게 아니라 자성할 대목들도 적지 않다. 항목별로 보면 경제 참여·기회가 114위로 종합 순위보다 낮았고, 더 세부적으로는 근로소득(119위), 고위직 비율(128위)이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남녀 임금 격차가 크고, 여성의 승진이 힘들다는 뜻이다. 한국 남성이 100만 원의 임금을 받을 때 여성은 69만 원을 받고, 여성 10명 중 4명은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으로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1.5%에 불과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만년 꼴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을 자랑하고, K컬처로 문화 강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최악의 저출산은 물론이고 고용, 복지, 교육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성평등 정책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 극단적 혐오의 충돌로 젠더 갈등의 골만 깊어져 우려스럽다. 성평등을 통해 여성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체의 과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