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데탕트는 착시 현상이다[기고/이성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5일 23시 36분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최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미중 관계의 극적인 돌파구라기보다는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를 관리하는 성격에 중점이 찍혀 있다. 미국 측 인사들의 말처럼, 양국 관계에 ‘바닥을 깔아(put a floor)’ 자유낙하 중인 미중 관계 추락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작년에 합의한, 미중 경쟁이 충돌과 대결로 번지는 것을 막을 ‘가드레일’을 뒤늦게 다시 설치하겠다는 의미다.

한국 일각에서는 미중이 전격적인 데탕트(긴장 완화)로 방향을 틀었으니 우리도 늦기 전에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미중 ‘해빙(thaw)’을 언급했기 때문인데, 같은 날 중국은 반대로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바이든의 발언이 중국과 사전 조율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바이든의 유화 제스처는 시진핑과의 양자회담을 향한 외교적 포석이다. 그 동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중 간에는 냉전시대에도 있었던 군사적 핫라인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만을 둘러싸고 미중이 각각 군사 자산을 증강하고 있으며 우발적 충돌이 상시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전쟁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을 중국에 보내기 전, 미국이 중국에 국방장관 회담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군사 충돌만은 피하려는 긴장 ‘톤 다운’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제기되는 미중 ‘데탕트’가 아니다. 미국은 이번 미중 장관급 회동을 거쳐 올해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을 초청할 생각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지만 양국 관계의 질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도 반중 전선에 동참하기를 주저해 온 유럽을 견인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이로써 유럽에서 대중 포위 대오가 정비된 셈이다. 미국은 이를 큰 성과로 본다. 유럽도 참여한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회담을 ‘반중 워크숍’을 했다고 중국이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다.

이번 블링컨이 중국으로 가는 길에 한국·일본 외교 수장과 연쇄 통화하며 한미일 연대를 확인했다. 미국의 반중국 전선에 동맹국과 연합 전선을 펼치는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의 일환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러한 전략적 패러다임은 일관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바이든이 시진핑과 만나려는 이유는 소위 ‘시진핑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차원에서다. 미국 내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기가 ‘2027년’ 시간표보다 더 앞당겨졌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는 통일을 집권 ‘레거시’로 삼고자 하는 시진핑의 ‘임기 내 통일 의지’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한다. 미중 정상 간 대화를 통해 이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중 대화 시도를 키신저식 미중 ‘데탕트’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군사 충돌 파국을 막고자 하는 미국의 소통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이는 최근 경색 국면을 보이는 한중 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美中#데탕트#착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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