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노그룹이 최근 부산에 연간 생산 20만 대 규모의 전기자동차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귀도 하크 르노그룹 부회장이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 밝힌 내용이다. 투자 금액은 1조 원 이상으로 예상되고, 양산 시점은 2026년 이후다.
기아가 4월 경기 화성시에서 전기 베이스의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용 공장 착공식을 열었고, 현대자동차는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 착공을 4분기(10∼12월)로 확정했다. 현대차그룹의 외로운 투자 행보에 르노가 가세하면서 국내 전기차 생태계도 활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르노의 계획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지근거리에서 안정적으로 납품해줄 배터리 공장이 지어져야 한다. 미국, 유럽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한국이나 중국 배터리업체들과 앞다퉈 자신들의 안방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는 이유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배터리 기업을 3곳이나 보유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도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배터리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해외에 짓기로 한 합작 공장에만 집중해도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북미의 경우 한국 배터리 3사가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은 단독과 합작 공장을 포함해 모두 15곳, 생산 규모로는 560GWh(기가와트시)에 달한다. 국내 기업인 현대차그룹과의 합작 공장이 지어질 곳도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와 미국이다.
국내 공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플랜트는 18GWh, SK온의 서산공장은 5GWh 규모다. LG가 향후 33GWh로 확대할 계획이라지만 해외 투자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정호 르노코리아 상무는 22일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배터리산업 간담회에서 “한국 전기차 공장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배터리 생산 부족으로 투자 결정에 불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배터리 때문에 전기차 공장 투자가 엎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사히 투자로 이어져도 K배터리의 안방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투자의 실익이 없어서다.
SK온과 미국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공장 3개를 지으면서 미 에너지부로부터 최대 92억 달러(약 12조 원)의 정책자금을 저리로 빌릴 수 있게 됐다. SK온이 현대차와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배터리 공장은 7억 달러의 보조금을 챙길 예정이다. 삼성SDI와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인디애나주 합작 공장도 15년간 세금을 면제받는다.
한국에선 기대하기 힘든 조건들이다. 무역협회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현 SK온 팀장은 “국내에선 경쟁국 대비 지원 규모가 미흡하다”며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지방투자촉진 보조금도 기업당 최대 지원 한도가 국비 100억 원으로 제한돼 아쉽다”고 했다.
자유경쟁시장에서 기업 유치의 가장 큰 명분은 돈이다. 유치 조건이 적어도 경쟁국들보다 모자라진 않아야 한다. 자칫 방심했다간 배터리를 수입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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