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이 요새 화두다. 최근 정부가 라면 가격 인하를 압박하면서부터다. 경제부총리는 “(국제) 밀 가격이 1년 새 약 50% 내렸다. 제조업체도 가격을 좀 내리든지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여기에 국무총리까지 가세해 “원료(밀) 가격은 많이 내렸는데 제품 값이 높은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을 좀 더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밝혔다. 라면 제조사들이 라면 가격을 안 내리면 정부는 공정위 담합 조사까지 불사할 태세다.
서민음식의 대표주자이자 한국인의 ‘솔푸드’인 라면 가격 인하야 반길 일이지만, 라면 가격 잡는다고 물가가 잡힐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명박 정부 때도 고물가로 시름을 앓자 라면과 빵 가격을 먼저 잡았었다. 2010년 당시 정부는 라면 빵 과자 등 식품업체들에 담합 조사를 언급했고, 공정위는 조사 의사를 밝혔다. 빵이 주력인 SPC그룹을 필두로 라면, 제과업체가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이번에도 라면 가격 인하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라면 제조사들은 밀 가격이 올라도 제분회사들이 밀가루값을 안 떨어뜨려 가격을 못 내린다고 버텼지만, 제분회사들이 3분기에는 밀가루 가격을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기업 가격 책정 구조는 복잡해서 라면은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 전분 팜유 등 원재료 가격은 여전히 높고 인건비, 포장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까지 오름세다.
속설로 보수정권이 집권하면 기업을 잘 아는 만큼 기업을 잘 길들일 것이란 말도 나온다. 실제 2012년 공정위는 농심 오뚜기 등 4개사에 과징금을 총 1362억 원 부과했고, 미국선 이를 근거로 국내 라면 제조사들이 수천억 원대 집단소송을 당했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은 라면 담합 무효 판결을 내렸고 2018년 미국에서 원고가 항소를 포기해 ‘7년간의 담합 소송 대장정’은 끝났다. 하지만 라면 제조사들은 그 7년간 막대한 소송 비용과 기업 활동 제약을 감수해야 했다.
경제학적으로 소비자 물가에서 라면 비중은 비교적 낮다. 통계청 소비자 물가지수의 총합을 1000으로 볼 때 라면은 2.7로 돼지고기(10.6), 쇠고기(8.8), 우유(4.1)보다 낮을뿐더러 전기료(15.5), 도시가스료(12.7), 휴대전화료(31.2)보다 확연하게 낮다. 특히 인건비와 임차료 전기료 등의 총합인 외식물가는 총 126.7에 달한다.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 체감 물가를 위해서라면 당국이 뭘 해야 할지 보여준다.
현재 전기료와 가스료 등 추가 인상 요인이 있는 데다 하반기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 유류세 인하 폭 축소,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 최저임금 인상 등 물가 관련 현안이 산적해 있다. 세수 펑크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당국이 물가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많지는 않다. 환율 인상에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특정 품목 대상의 인위적이고 반시장적인 가격 통제로 전체 물가가 잡히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서민생활 밀접 52개 품목으로 구성한 ‘MB 물가지수’도 5년간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1.6배에 이르는 것으로 끝났다. 정부의 라면 가격 인하 압박에 대해 물가 안정이 기관 목표인 한국은행 총재는 “정치적으로 해석할 문제”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지금은 정부가 특정 품목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보다는 경제 체력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국민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에 힘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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