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제주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것을 시작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이날 제주와 남해안에 강한 비를 뿌린 비구름대는 오늘 중부지방으로 확대돼 전국 곳곳에 물 폭탄을 퍼부을 전망이다.
올해 여름은 역대급 슈퍼 엘니뇨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가 예고된 상태다. 지난해 여름 수도권 집중호우와 태풍 힌남노가 남부 지방에 몰고 온 폭우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데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수해 대응을 하겠다던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장마가 시작되도록 단기 침수 대책조차 마무리 짓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지난해 8월 115년 만의 호우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는 등 총 8명이 사망하고 684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서울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반지하 퇴출’을 선언했지만 반지하에서 벗어난 가구는 21만 가구 중 1%에 불과하다. 침수 가능성이 높아 물막이판과 역류방지기를 설치해야 하는 곳이 1만5500가구인데 실제 설치한 가구는 40%밖에 안 된다. 세입자와 연락이 안 되거나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집주인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대한 설득하되 당장 이동식 물막이판이라도 지원해야 한다.
빗물받이 막힘 현상은 침수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이었다. 서울시는 225억 원을 들여 시내 빗물받이 54만 개를 모두 청소했다고 발표했는데 피해가 컸던 강남역과 신림동 일대에는 여전히 쓰레기에 막혀 있는 곳이 많다. 침수 위험지역이 분포된 부산과 대전의 빗물받이 점검 이행률은 10%도 안 된다. 태풍 ‘힌남노’로 포항 냉천이 범람해 인근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7명이 숨졌는데 하천 정비 공사는 지난달 말에야 시작돼 2년은 걸릴 전망이다. 요행만 바라며 손 놓고 있겠다는 건가. 물이 잘 빠지도록 임시 복구라도 서두르고 침수 예보나 재난 문자를 신속히 보내 대피할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단기 대책도 예산과 민원을 핑계로 미루는 판이니 장기 대책을 제대로 이행할지 의문이다. 서울 광화문과 강남역의 초대형 빗물터널과 도림천 유역 지하방수로는 올 11월에나 착공할 계획이다. 포항 냉천 하류의 주거 밀집지역과 철강산업단지 범람을 막기 위한 상류 댐은 타당성 조사도 시작하지 않았다. 일 터지면 민심 달래려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가 계절 바뀌면 흐지부지하는 재난 행정으로 어떻게 기후재난 시대를 대비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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