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개전 3일[임용한의 전쟁사]〈26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6일 23시 32분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로 진입하고, 서울 함락이 공식화됐다. 당초 북한의 목표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었는데, 성공했다. 서울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여러 가지 안 좋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정설로 믿고 있는 소문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한강 다리 폭파도 전략적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피란민들이 다리에 있는 상태에서 폭파해서 무수한 민간인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폭파의 절차, 타이밍, 명령체계가 대혼란이었다.

그럼 이런 대혼란은 왜 벌어졌을까? 3일 만에 전선이 무너지고, 수도가 함락당하는데,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독일군이 처음 전격전이란 구상을 내놓았을 때, 90%의 장군들이 반대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고 너무나 위험한 작전이라고 했다. 지지자들의 반론은 그건 탁상에서 냉정하게 전황을 분석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전쟁은 발발하는 순간 혼란이다. 상대가 빠르고 깊게 찌르고 들어오면 대부분의 지휘관, 조직은 대혼란을 일으킨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전격전 지지자들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논쟁이 탄생한다. 독일군을 대상으로 전격전을 시행하면 먹혀들까? 패튼이 프랑스에서 종심으로 파고드는 전술을 구상했을 때, 미군 지휘부는 까무러쳤다. 그러나 결론은 독일군을 상대로도 먹혔다.

공포와 충격을 이겨내는 군대는 없다. 유일한 대안은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군은 그런 부분에 대한 전술적 대비가 전혀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모든 비난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3일 작전은 실패한다. 서울은 점령했지만 대한민국 정부와 행정력은 붕괴되지 않았다. 한강 이북에 고립되었던 국군 병사들은 기를 쓰고 탈출해 군으로 복귀했다. 수많은 무명의 장병들이 5분, 10분을 벌어주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우린 그 참전용사들이 다 돌아가실 동안 정치인만 비난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채록하지 못했다. 진정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6·25전쟁#개전 3일#임용한의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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