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정보]미로 탈출하기보다 어려운 아마존 서비스 해지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6일 23시 51분


‘당신은 아마존을 로그아웃할 수 있지만 떠날 순 없다.’ 노르웨이 소비자협의회(NCC)가 2021년 ‘아마존 프라임’ 이용 회원 1000명을 조사한 뒤 낸 보고서의 제목이다. 유료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한 뒤 해지하는 과정이 무척 어렵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아마존을 떠나려면 수수께끼 풀듯 헷갈리는 선택과 반복되는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마존 프라임은 가입자가 2억 명으로 지난해 45조 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한두 번 클릭으로 가능한 가입과는 달리 해지는 매우 까다로워 늘 비판의 대상이 됐다. 최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드디어 ‘칼’을 뽑아 들었다. FTC는 “아마존이 사용자를 기만했으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했다”며 시애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FTC에 따르면 아마존 프라임을 해지하기 위해 4개의 화면 바뀜과 6번의 클릭, 15가지의 옵션 취소를 거쳐야 한다. 한 누리꾼은 본인의 해지 과정을 보여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아마존은 “(혐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 뛰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유출된 아마존 내부 문서에선 의도적으로 해지를 어렵게 만들어 해지율을 14% 감소시켰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내부에선 해지 과정을 ‘일리아드 흐름’이라고 불렀다. 장장 9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다룬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처럼 구독 해지가 길고 힘겹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FTC가 아마존 소송에 나선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정기구독이 급신장을 한 만큼 구독 해지와 관련된 불만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연간 수만 건의 소비자 불만을 접수한 FTC는 아마존에 대한 소송 외에 통신사, 피트니스 업체 등도 조사 중이다. 지난해엔 한 인터넷 기반 전화 서비스 업체가 구독 해지를 방해했다며 이용자에게 1억 달러를 배상하도록 했다. 3월엔 가입과 동일한 방식으로 간편하게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방안도 내놓았다. 소비자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주겠다는 것이다.

▷미로보다 복잡한 구독 해지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금이 결제돼 황당했던 경험은 온라인 서비스 이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상거래 업체가 숨기고 비트는 설계로 고의적인 함정을 만들면 아마추어 이용자가 걸려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국내에서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움직임이 막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 온라인 거래 시 어려운 해지나 사용자 동의 없는 유료 갱신 등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국회에도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빠른 법 개정으로 속는 줄도 모른 채 당했던 소비자들의 억울한 불이익을 해소해 주기 바란다.

#아존#서비스 해지#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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