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스크바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던 러시아 용병 반란군이 진군을 멈추면서 반란 사태는 36시간 만에 수습된 분위기지만, 세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체제를 불안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어제 “러시아에 전례 없는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이번 사태의) 마지막 장을 보지 못했다”며 모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의 실각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반란 사태의 봉합으로 푸틴 대통령이 집권 23년 만의 최대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라는 관측이 많다. 당장 푸틴 정권의 붕괴를 예단하기는 너무 성급하다. 다만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푸틴 체제, 그것도 권력의 핵심에서 심각한 균열을 드러낸 것은 예사롭지 않다. 푸틴 대통령은 견고한 기득권의 카르텔을 만들어 ‘원맨 통치’를 해왔다. 악화되는 우크라이나 전황 속에서도 정규군과 용병 간 상호 견제를 통한 충성 경쟁을 유도했다. 하지만 그런 책략이 더는 통하지 않을 만큼 권력 내부가 갈등과 알력으로 불안정해진 것이다.
용병기업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총부리를 러시아로 돌린 이유는 그가 ‘늙은 광대들’이라 부른 러시아군 수뇌부와의 갈등이 폭발한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최측근이 정면 도발을 감행한 것은 푸틴 정권의 취약성, 나아가 쇠퇴의 징후를 누구보다 빨리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이번 반란 사태로 그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도, 반란군 진격을 막지도 못한 러시아군의 무능이 드러났다. 푸틴 체제에 치명상까진 아니더라도 응집력에 균열을 내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21세기 러시아에선 지금 중세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용병의 반란은 부패한 권력의 말기 증세를 보여준다. 이웃 나라 주권을 난폭하게 유린하는 불의(不義)의 전쟁을 일으킨 것부터, 나아가 그 전쟁의 진창에 빠져 내부 반란까지 겪는 푸틴 체제는 이미 권력의 예정된 말로를 걷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권력의 몰락은 늘 그랬듯 위태롭다. 더욱이 세계 최다 핵무기를 보유한 독재국가다. 예측불허의 사태 전개 가능성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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