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은]100세 과학자가 남긴 조언 “너무 이른 은퇴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8일 00시 12분


“죽기 전에 고속도로에서 배기가스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소. 나는 지금 96세이니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전기차 배터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의 과거 인터뷰들에는 나이를 잊은 열정과 여유가 가득하다. 2019년 97세 나이로 최고령 노벨상 수상자 기록을 쓴 그는 25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슈퍼 배터리’ 연구를 계속했다. “오랜 연구의 비결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에 그가 내놨던 답변은 “너무 일찍 은퇴하지 말라”였다.

▷80대, 90대에도 일을 계속하는 현역들은 고령화에 접어드는 현대사회에서 주목받는다. 올해 3월 타임지는 ‘왜 그만둬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95세 변호사, 85세 엔지니어를 조명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유명인들에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배우 해리슨 포드는 81세 나이에 액션 연기를 선보였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93세 나이에 최고령 감독이자 배우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인공지능(AI)을 연구해 책을 썼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한 90대 스시집 셰프는 “아침마다 생선과 쌀, 물, 직원, 손님들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히트 친 게임을 개발한 87세 프로그래머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60세에 은행을 은퇴한 뒤였다고 한다. 초고령화사회인 일본에서는 90세 이상 취업자가 5000명에 이른다. 고령에도 “일을 즐긴다”는 이들은 “배우고 일하는 데 늦은 나이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이 주는 일상의 긴장감과 자극 덕분에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구(老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96세 연방판사가 “일을 그만두라”는 동료의 소송에 맞서 법정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업무 역량과 처리 속도, 기억력 등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이 종신직 판사는 “아직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정반대로, 일을 내려놓고 싶어도 경제적 이유로 은퇴를 미뤄야 하는 생계형 현역들도 적잖다. 직종과 분야, 근무 환경에 따라 정년에도 차이가 있다.

▷정년은커녕 ‘파이어(FIRE)족’을 꿈꾸며 조기 은퇴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속출하는 세상이다. 젊은 날의 고단한 근무를 황혼기 이후까지 계속한다는 게 어쩌면 막막하다. 그래도 자아실현과 삶의 의미를 찾는 데는 일만 한 것도 없다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은 증언한다. 국내에도 95세까지 마이크를 잡았던 MC 송해부터 91세에 말춤을 춘 현직 대학총장까지 수많은 사례가 있다. 진정 하고픈 일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직장, 직업을 넘어 천직을 찾아나갈 때 가능한 일들이다.

#100세 과학자#조언#너무 이른 은퇴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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