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조현병 딸 병상 없어 260km”… 가족에 떠넘긴 정신질환자 돌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8일 00시 21분


몸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기듯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도 응급 상황이 닥친다. 정신질환자의 응급 상황이란 피해망상이나 환청 같은 증상이 심해져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뜻한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임에도 병상을 찾아 제때 치료를 받기가 일반 환자들보다 훨씬 어렵다. 정신질환자는 증가 추세인데 병상 수는 줄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로 추산한 결과 조현병, 지속적 망상장애, 재발성 우울장애 등 중증정신질환자 수는 지난해 107만 명으로 2017년보다 2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올해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상 수는 5만5000개로 2017년보다 18% 감소했다. 정신건강과 입원 진료비는 하루 25만 원으로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이다. 치료할수록 손해 보는 입원 진료 수가 구조 탓에 병상 부족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곳에 살면서 18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딸(34)을 돌보는 어느 60대 부모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3개 병원을 전전하느라 260km를 돌고도 병상을 못 찾아 되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가족의 몫이다. 정신질환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만성 질환자가 되면 가족의 돌봄 부담이 커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범죄 발생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낮은 편이지만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범죄의 80%는 중범죄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는 5600명으로 5년 새 66%나 증가했다.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자들이 도움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가 범죄자가 되어 치료감호소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보건예산 가운데 정신건강 예산 비중은 2.7%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5%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1인 가구가 늘고 있어 정신질환자의 돌봄을 가족에게 떠넘기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중증 및 응급 정신의료를 필수의료에 포함시켜 병상 수를 늘리고, 퇴원 후에도 지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와 가족도 살고 사회도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조현병#정신질환자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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