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베스트 애널’도 주가조작… 대체 누굴 믿고 투자하란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8일 23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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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애널리스트 A 씨가 특정 기업 주식을 지인 명의 차명계좌로 사들인 뒤 해당 주식을 사도록 투자자들에게 권하는 리포트를 써서 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에 최근 송치됐다. 금융감독원은 그가 지난해까지 10년간 22개 종목을 67차례 거래해 5억2000만 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파악했다. 그사이 그는 증권사 3곳을 옮겨 다녔고, 몇 년 전에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던 셈이다.

최근 줄줄이 터져 나오는 주가조작 사건들은 우리 증시가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에 걸맞은 수준을 갖추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더욱이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를 주도한 미등록 투자자문사 대표, 이달 중순 5개 종목 폭락사태 때의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 운영자와 달리 A 씨는 증시의 공식 참가자인 애널리스트다. 자기 리포트를 지렛대 삼아 주가를 조작하고 이익을 챙김으로써 투자자 보호, 신의성실의 원칙 같은 기본적인 직업적 윤리를 포기했다.

이름 있는 증권사가 내놓는 리포트마저 주가조작에 이용되는 증시는 서로 속고 속이는 복마전이나 다름없다.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최근 3년간 미공개 정보 이용, 시세조종, 사기적 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 행위로 법원에서 1심 판결을 받은 피고인 57명 중 집행유예 아닌 실형을 받은 사람은 25%, 14명에 불과했다. 2심 피고인 69명 중 36명은 1심보다 형량이 줄었고, 1심에 비해 중형이 선고된 건 3명에 그쳤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최근 주가조작 범죄 등이 단 한 번만 적발돼도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조작범의 형벌이 확정되기 전 부당이익의 최대 2배, 50억 원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부당이익 산정의 어려움, 과잉입법 우려를 들어 일부 의원들이 반대해서다.

주가조작에 대한 약한 처벌은 재범의 유혹을 키운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작년까지 4년간 불공정 거래로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한 643명 가운데 23.2%인 149명은 과거에 같은 일을 저질렀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썩은 살’을 과감히 도려내지 못하면 한국 주식시장은 후진(後進) 증시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베스트 애널#주가조작#불공정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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